<세계사의 구조>와 함께 가라타니 고진은 비평가에서 사상가로 등극한다. 고진은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을 그 연장선상에서 완성하고자 한다.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을 반복한다는 것은 동시에 마르크스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과 네이션, 국가를 상호연관적으로 파악한 헤겔을 비판하면서 마르크스는 자본제 경제를 하부구조로, 그리고 네이션이나 국가는 거기에 얹힌 상부구조로 간주했다.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하부구조를 철폐하면 국가나 네이션은 자동적으로 소멸된다는 관념은 거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마르크스주의적 운동은 국가와 네이션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마르크스는 생산양식의 관점에서 세계사의 구조를 설명했지만, 고진은 교환양식을 통해 그것을 해명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설명을 보완하고자 한다. 마르크스와 함께하면서 마르크스를 넘어서고자 한다. 21세기의 책이란 무엇인가? 멀게는 인류사를, 가까이는 19세기와 20세기의 근현대사를 복기하면서 21세기의 새로운 전망을 여는 책이어야 하지 않을까. <세계사의 구조>가 해낸 일이다(<세계사의 구조>는 2024년에 개정 번역본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