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 2023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25년 <너의 유토피아>로 필립 K. 딕상 최종 후보에 선정된 소설가 정보라의 2025년 최신작. 이야기의 배경은 로봇 공학과 인공 자궁 연구가 발달한 근미래다. 아이를 낳는 고통과 기르는 어려움을 기술과 국가가 분담하는 이 세계에서 주거환경관리과 소속 조사관으로 일하는 주인공 '무정형'은 관할 건물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조사하다 수도관 아래 귀신과 눈이 마주친다.
살아있을 때 아이, 색종이는 공동보육시설인 '아이들의 집'에 머물렀다. 마지막으로 본 색종이를 기억하는 '가루'의 이야기에서, 친모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한 아이의 사건에서, 귀신 들린 건물에서 어쩐지 무정형은 떠날 수가 없다. 친구인 양육교사 '정사각형'의 도움으로 무정형은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한편 해외 입양인인 '표'와 '관'은 자신들의 자신들의 입양에 '어린 사람들의 행복을 지지하는 모임'이라는 이름의 사설단체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옛 이야기 <장화홍련전>의 자매는 귀신이 되어 부사에게 억울함을 고한다. 이 이야기에서 무서운 건 귀신이 된 자매가 아니라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인간의 악의였다. 정보라의 소설은 "사람이 제일 무서워. 귀신은 불쌍하지."라고 덧붙인다. 간간히 웃기다 서늘하게 고발하며 사건의 진실을 향해 조사관은 다가간다. 생성형 AI에게 사주팔자를 물어보는 세상이다. 기술이 도래해도 제도와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 '행복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모든 아이들, 살아남아 어른이 된 사람들,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연대'(작가의 말, 275쪽)를 전하며 세계와 함께 읽는 작가가 맺힌 목소리를 옮겨 적는다.
공부하라고 하면 이상하게 더 하기 싫어진다. 스스로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이 들 때, 그게 진짜 공부의 시작이다. 맞춤법 공부를 권하는 것보다 재밌는 이야기를 함께 읽자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맞춤법 천재라면>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풍성하게 담아 자연스럽게 맞춤법을 습득하게 만든다.
매운맛, 순한맛, 컵라면, 삼각 김밥, 짜장, 부셔부셔, 너굴, 비빔이.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라면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한다. 여기에 김치 할아버지, 달걀 누나(언니), 파 삼촌까지 '나라면 더먹으리 마을' 주민들이 가세한다. 이야기는 '맞춤법 천재라면 선발 대회'를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슬쩍슬쩍 읽다 보면 '윗어른'이 아닌 '웃어른', '문안한'이 아닌 '무난한', '맞추는'이 아닌 '맞히는'이 맞는 표현이라는 것을 저절로 익히게 된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초등 필수 맞춤법 75가지를 정복하게 되는 것이다. 맵고, 순하고, 진하고, 통통한 라면들과 함께하는 유쾌한 여정을 통해 어휘의 기초를 다져주는 <맞춤법 천재라면>. 맞춤법이 지루하고 어렵다고만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책 한 권이 꼭 필요하다.
모든 괴담은 재미있다. 그리고 괴담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언제나 그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물론 실체를 알고 나면 왠지 조금 시시해지지만, 진실을 들을래? 말래? 묻는다면 난 언제나 듣는 쪽이다. 진실엔 어떨 땐 괴담 그 자체보다 더 경악스러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것까지도 포함한 맥락 전체가 괴담을 완성시킨다.
SF 작가 이산화가 무려 4년의 기간 동안 동서양의 고문헌을 탐독하며 괴물에 관한 책을 집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괴물의 '실체' 이야기라고 하겠다. 책은 시대별로 화제 되었던 세계의 괴물들을 찾아내고, 사람들이 괴물이라고 믿었던 그것들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혀낸다. 그 실체엔 동시대인들의 두려움, 불안, 편견, 혐오, 욕망, 허영이 담겨있다. 하나하나 괴물들의 실체가 밝혀질 때마다 허무한 동시에 루머라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것인지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책은 분위기를 잘 살린 일러스트들을 통해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영화 '파묘'의 콘셉트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린 최재훈의 작품들이다. 생생히 복원된 괴물들의 그림이, 당시의 사람들이 이들의 존재에 얼마나 흥분했을지 상상하게 만든다. 괴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여러모로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다. 괴물로 유명한 또 다른 작가 곽재식이 "괴물학의 걸작"이라는 말로 추천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성공을 그려본다. 그 모습은 각자 다를지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지금보다 나은 나'를 향한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를 하나하나 몸으로 부딪쳐 배우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길을 찾은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생의 힌트들이 숨어 있다. 그들의 선택과 패턴을 따라가다 보면, 나 또한 언젠가 도착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치 누군가 시험 전날 조용히 건네준 요점 정리 노트를 손에 쥔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진다.
<인생 컨닝페이퍼>는 바로 그런 인생의 '요점 정리 노트' 같은 책이다. 유튜브 채널 '인생컨닝, 박종경 변호사'로 2030세대의 인생 멘토가 된 박종경 변호사가 10년 넘게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관찰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된 패턴과 실패한 사람들의 특징을 분석해 정리했다. 돈, 사람, 결혼, 일, 꿈, 마인드라는 삶의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 책은 추상적인 동기부여가 아닌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현실밀착형 조언을 담고 있다. 더 이상 혼자 해답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검증된 성공의 루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여러분도 그 지점에 닿아 있을 것이다.
진작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수많은 방황과 후회, 되돌릴 수 없었던 선택들 앞에서 조금은 덜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정말 다행이다. 뒤늦게라도 방향을 틀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니까.
레이 달리오, 그의 이름만으로도 전 세계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그 놀라운 통찰력이 이번에는 더욱 거대한 경고를 던진다. <원칙>으로 우리에게 인생과 경영의 철학을 제시했던 그가 이번에는 국가와 제국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빅 사이클>은 단순한 경제서가 아니다. 500여 년간의 역사를 관통하며 발견한 거대한 패턴, 바로 '대규모 부채 사이클'의 비밀을 파헤치는 예언서에 가깝다. 그가 "현 상황은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경고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세계는 이미 13번째 대규모 부채 사이클의 끝자락에 서 있고, 역사가 증명하듯 이 사이클의 끝은 언제나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1700년 이후 존재했던 750여 개의 외환,채권 시장 중 단 20%만이 남은 현실이 이를 웅변한다.
트럼프 2.0 시대의 개막과 함께 현실이 되고 있는 미중 갈등, 그리고 전 세계를 엄습하는 국가 부도 위기는 우연이 아니다. 레이 달리오가 정의한 '빅 사이클의 5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들이다.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는 국가들, 분열과 대립으로 얼룩진 정치 질서, 그리고 포퓰리즘과 권위주의의 부상까지. 그의 분석은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듯 정확하게 현실과 맞아떨어지고 있다. 이 책이 단순한 경제 분석서를 넘어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이 달리오는 부채 문제가 어떻게 지정학, 자연재해, 인공지능 같은 다른 힘들과 얽혀 세계 질서 전체를 흔드는지 보여준다. 마지막에 던지는 그의 원칙을 기억하자. "걱정하지 않는다면 걱정해야 하고, 걱정한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위기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자,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이 책을 집어 드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무방비한 존재가 아니다.
세상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결국 정해진 흐름을 따라간다는 걸 느꼈다. 읽고 나면, 그 거대한 흐름을 거슬러 설 수는 없어도 적어도 휩쓸리진 않을 용기가 생긴다.
내가 살 수 있는 집, 앞으로 높일 수 있는 연봉, 가족 중 누군가 아플 때 내 앞에 놓일 선택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눈앞에 한 꺼풀 돈의 장막이 씐다. 그러면 급격히 마음이 졸아든다. 과거의 선택들을 짚어보며 놓친 기회비용을 쪼잔스럽게 따져본다. 별안간 세계를 보는 관점이 조금 바뀐다. 정신이 버석 해지면서 그간 기쁨이었던 것들이 모두 단지 지출로 느껴진다.
마르고 쪼그라든 마음에 이 책은 작은 구멍을 뽁뽁 내어 조로록 물을 붓는다. 돈으로 모든 것을 계산하려 할 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돈 밖의 세계에 대해 책은 이야기한다. 교환이 아닌 증여가 어떻게 우리 삶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지 여러 사례를 통해 깨닫게 한다. 대가 없는 증여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음은 조금씩 맑아지고 시야는 다시 트인다. 기쁨이었던 것이 다시 기쁨의 자리를 찾는다.
책은 비트겐슈타인과 토머스 쿤의 개념을 활용해 증여의 원리와 원칙을 밝혀낸다. 우리 삶 속에 증여가 늘 숨어 있음을 깨달은 사람만이 증여를 할 수 있다. 깨달음이 많을수록 모두가 더 풍족해질 수 있다. 일본에서 출간된 이후 이 책은 '증여 열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유의미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작은 오해로 인해 '허언증' 낙인이 찍힌 홍지민. 새학기가 되자마자 왕따로 찍혀버리니 급식실에 같이 갈 친구가 없다. 혼자 밥을 먹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인터넷 커뮤니티 '밍글'에 혼자 급식 먹는 법에 관해 물어본다. 마치 자기 일인 양 공감해 주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급식을 빨리 먹고 도서관에 가면 된다는 조언을 보고 실행한다. 도서관이 주는 안도감에 만족할 무렵, 우연히 공부도 잘하고 학교에서 인기도 많은 태오, 현서와 함께 고전문학 읽기 동아리를 만든다. 급식을 같이 먹을 친구도 사귀고, 동아리에서 새로운 관계도 맺고, 여느 열다섯 살 아이처럼 좋아하는 사람도 생기는 지민.
홍지민은 아주 평범한 아이이다. 요즘은 '평범'이란 단어가 오염되어 별 볼 일 없다는 식으로 치부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 얼굴과 밟아온 생애가 다 다르듯 같은 삶은 전혀 없고 이 세상에 천편일륜적인 건 없다. 황영미 작가는 "평범한 캐릭터와 이야기로부터 특별한 순간을 발견하는" 데에 탁월한 작가이다. 4년 만의 신작인 이 책에서도 평범하지만 그렇기에 빛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딱 봐도 촌닭인데, 왜 저렇게 당당하지?'라는 의문을 받았던 홍지민. 주눅 들지 않고 평범한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 그 아이에게서 상처받았던 유년을 회복한다.
1997년 6월 25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1주일 전. 당시 12세 소녀 탄커러는 생애 첫 실연을 당했고, 동생 탄커이를 처음 만나 첫눈에 반했다. 당장이라도 이혼할 듯 서로 으르렁거리는 부모 아래에서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져 동생을 데리고 가출하기도 하고, 중학생이 되어서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도 어디든 동생을 데리고 다녔다. 갑자기 키가 8센티미터나 커진 뒤에는 동생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오지랖 넓은 사람들에게 미혼모로 오해받기도 했다. 가족의 해체와 부모의 부재, 신산한 세상사 속에서 남매는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어갔다. 그러던 가운데 홍콩은 행정장관 직접 선거를 쟁취하려는 열기로 뜨거워졌고, 끓어오르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십 대 커이는 학교를 벗어나 거리로 나선다. 커러 역시 시위에 동참하였지만, 동시에 동생의 안위를 초조하게 염려한다. 홍콩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혁명의 열기와 좌절의 쓰라림 속에 남매는 조금씩 변해갔다.
소설은 작가 자신이 홍콩 민주화운동이 펼쳐지던 당시의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동생’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온 젊은이들의 슬픔과 사랑,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저항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2014년. 최루탄을 견디며 거리 점거 시위를 이어갔지만, 완전한 직선제 요구가 좌절된 후 홍콩 사회는 광범위한 우울감과 무력감에 휩싸였다. ‘센트럴 점령 운동’ 지지자라는 이유로 당국의 압박을 받은 작가 찬와이 역시 2018년 타이완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2022년 출간한 이 소설은 2023년 타이완 금전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사회적 의의를 인정받았다. 열두 살 터울의 남매가 1997년 홍콩 반환부터 2019년 민주화 운동까지의 굴곡진 시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홍콩이 이뤄낸 가치들, 상실한 기억들과 함께 홍콩에 살았던 수많은 젊은이의 초상을 담담하고도 강렬하게 드러낸 소설.
생물의 유전자를 분석하면 그 생물의 조상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를 읽어낼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를 이를 두고 생명체의 유전체를 '사자의 유전서genetic book of the dead'라고 부른다. 우리 몸을 단지 개개의 생명이 아닌 유전적 기록물로 보면, 일순간 시야가 광대하게 확장된다. 자, 그럼 이제 수천 년을 담은 눈으로 동물들을 둘러보자. 강아지, 고양이, 물살이들, 거북이, 고래, 도마뱀, 부엉이... 이들의 몸이 지닌 과거의 기록들을 상상해 본다. 흥미롭다.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 과거를 품고 있다. 과거와 단단히 연결된 채 미래로 나아간다. 이 생생한 흥미로움의 감각을 가지고 책을 펴면 생명 진화에 관한 신비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도킨스는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 생물체의 외적 특징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지를 들려준다. 유전자의 적응과 예측이라는 관점에 따라 세상을 보면 인간들 사이, 동물들 사이, 인간과 동물 사이의 위계보다는 그저 차이와 공통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역시나 도킨스는 빼어난 저술가이고, 이 책은 왠지 유전자라는 주제에 지레 겁먹었던 독자들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쓰였다. 도킨스의 세계에 접근해 보고자 하는 독자에겐 <이기적 유전자>에 앞서 이 책으로 흥미를 예열시키길 권한다.
한국 사회에 '저속노화'라는 화두를 던진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 교수의 신작이다. 전작들에서 전한 저속노화 원칙과 실천법을 차근히 살펴보고, 다양한 독자들의 반응과 일화를 통해 사회 전반에 퍼진 저속노화에 대한 오해와 명백한 오남용 사례를 바로 잡는다. '늙지 않겠다' 라는 조급함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에도 주목한다. 건강 강박이 또 다른 스트레스를 낳아, 되려 가속노화의 길로 접어든다는 것.
저자는 단순한 건강 정보를 전하는 것에서 나아가, 불안전한 개인이 마음을 돌보는 방식과 각자의 삶의 선순환을 만들기 위한 설계도를 함께 그려 준다. 글쓰기, 악기 연주, 달리기 등 저자의 삶에 녹아든 저속노화 루틴을 공개하며, 그것들을 어떻게 체화할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저속노화의 길잡이로서, 지치지 않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독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을 책이다.
한국과학문학상이 10주년을 기념해 수상 작가 다섯 명과 함께 앤솔러지를 출간한다. 2017년 수상자 김초엽, 2019년 수상자 천선란, 2022년 수상자 김혜윤, 2023년 수상자 청예와 조서월이 작품을 실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에 김초엽은 죽은 룸메이트가 보내온 초대장이 보드게임 토큰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천선란은 멸망한 세계에서 좀비와 인간과 거북이가 바다를 향하는 이야기를, 김혜윤은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 생명체 '오름'과 클라이밍으로 나누는 대화를, 청예는 데카르트의 6성찰에서 시작된 복제품과 진정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조서월은 웹에 소설을 게시하기 위해 캡차CAPTCHA 테스트를 통과해 '내가 로봇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사막에 남겨진 노인과 그와 함께인 로봇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SF라는 게임의 규칙을 변용해 작가들은 이세계, 좀비, 외계, 사고실험, 로봇 등의 다채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이야기를 타고 반투막과 해변과 사막을 지나쳐 우리는 결국 이 이야기들이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죽음 너머, 그리고 사랑.
오랜만에 단편으로 만나는 김초엽의 소설이 반가웠다. '확률이 너무 작은 수치여서 0이나 다름없다'(48쪽)는 화학의 언어에서 김초엽의 소설은 관측되지 못한 존재를, 0과 다름없지만 0은 아닌 존재들을 본다. '이 현실이 나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어딘가 내게 맞는 다른 세계가 있을 거라고 믿는'(66쪽)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 <비구름을 따라서>를 마치며 그는 작가노트에 '너머의 이야기'에 매료되는 스스로에 대해, '그 미약한 힘을 자꾸 믿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해 기록해 놓았다. 한국과학문학상이 소개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10년을 함께 보낸 독자들도 미약한 힘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리라 생각한다. 세계의 법칙으로는 지기만 하는 사람들, 세상의 장력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과학소설을 읽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상상하며 독자인 나는 이야기를 읽는 내내 벅차올랐다. 이 장르적인 벅참을 함께 나누며 다음 10년을 기대하고 싶다.
이슬아의 등장은 새로웠다. 자신만의 고유한 콘텐츠를 가지고 '일간 이슬아'라는 간단한 구독 플랫폼을 통해 저자와 독자가 직접 만났다. 지금은 너무도 흔한 구독 시스템이지만, 당시엔 무척이나 신선한 시도였다. 이슬아는 이후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며 현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산뜻한 작가가 된다. 여기서 그쳤다면 그녀의 커리어는 조금은 뻔한 플롯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책을 직접 출간하는 출판사를 차리며 대표로서의 아이덴티티 또한 그는 차례로 획득해 나간다. 창작자이자 프리랜서, 또 대표로서의 이슬아가 오랜 시간 동안 몸소 부딪히며, 깨닫고, 드디어 정립한 글쓰기, 그중 가장 실용적인 글쓰기라고 할 수 있는 이메일 쓰기에 대해 이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나는, 최근 일주일 동안 총 487통의 이메일을 받았고, 이중 161통의 이메일에 답장, 전달을 했거나 새 메일을 작성했다. 과연 나는 '제대로' 이메일을 작성했을까? 실용서와 에세이 그 중간 어디쯤 있는 이 책은 독자의 이메일 생활을, 업무하는 태도를, 종국에는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과연 너는 '제대로' 일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이 책을 읽으며 자주 웃었고, 종종 뜨끔했으며, 자꾸 새로운 다짐을 했다. 이슬아만이 쓸 수 있는, 단단하면서도 재기 발랄한 이 책은 이제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대화가 익숙한 현대인들 모두의 필독서가 될만한 값진 책임에 틀림없다.
연필로 그린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그림은 작가 펀자이씨의 트레이드마크다. 2022년 인스타그램에 연재한 이야기들을 모아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와 <외계에서 온 펀자이씨> 두 권의 책으로 독자들을 만났고, 이번에는 그중 엄마 이야기를 따로 모아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 1권과 2권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의 일상이 펀자이씨툰 특유의 개성 있는 그림과 따뜻한 시선으로 담겨 있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주는 혼란과 상실감은 무겁고 낯설지만, 펀자이씨는 그것을 담담하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낸다. 엄마의 엉뚱한 말과 예기치 못한 행동들, 그 속에 녹아 있는 가족 간의 애정과 웃음을 따라가다 보면, 슬픔보다는 삶의 온기를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기억은 희미해져 가지만 순간순간 반짝이는 감정과 가족간의 끈끈한 마음은 여전히 선명하다는 메시지는 책을 읽는 내내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그 잔잔한 울림은 독자에게도 자신만의 ‘순간’을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여운이 되어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주거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들은 대개는 우리가 부동산을 바라보는 복잡하고도 모순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집은 살기 위한 것이지, 돈벌이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라는 이상적 원칙과 "다른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서 부동산에만 몰릴 수밖에 없다"라는 냉혹한 현실 사이의 괴리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개인의 관점 변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부동산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한국에서 부동산을 둘러싼 근본적 갈등은 결국 '살 곳을 마련하는 문제'와 '재산을 불리는 문제'라는 두 가지 상반된 필요가 한 공간에서 충돌하면서 생겨났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일반인의 소득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곳에 투자하자니 주식은 변동성이 크고 예금 금리는 인플레이션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부동산만이 유일한 자산 증식 수단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이런 구조적 딜레마는 더 이상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가 반드시 풀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부동산 시장의 호황과 불황, 정책 변화와 경제 위기를 모두 겪어온 1세대 투자 전문가 김사부는 이런 사회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단순히 감정적으로 뛰어들거나 남들 따라 하는 무작정식 투자가 아닌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한 부동산 투자 접근법을 강조한다. 한국인에게 부동산은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존적이고 절박한 과제인 동시에, 평생 모은 돈을 안전하게 불려서 진정한 경제적 자유와 여유로운 삶을 얻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투자 도구인 듯하다. 이 책은 부동산을 둘러싼 끝없는 사회적 논쟁과 개인적 고민의 늪을 뛰어넘어,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정부 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투자 철학과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실행 방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진정한 경제적 독립과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명확하고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해답을 제공한다.
결국 중요한 건 타이밍이 아니라 준비라는 생각이 든다. 묵묵히 공부하고 흐름을 지켜보면, 언젠가 나에게도 기회의 문은 열릴지 모른다. 오늘은 그 기다림을 시작해 본다.
<다른 사람>, <화이트 호스> 등의 작품으로 한국사회라는 공간에서 여성으로 존재하는 공포를 신들린 듯 받아적은 소설로 작품 목록을 쌓아온 소설가 강화길이 4년 만에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소외된 소도시, 만병통치약을 파는 교회, 학교 수영장, 자연주의 치료원 등의 공간을 배경으로 서로를 잊지 못하는 여성들의 끈적이는 눅진한 감정이 교차하며 강화길이라는 세계의 한 분기점을 찍는다.
열다섯 살 가을, 박지수는 살이 찌면서 세계와 불화하고 비로소 부피만큼 존재감을 얻는다. 모두가 사랑하는 소녀 '해리아'가 지수를 알아본 것에 감격하던 날도 잠시, 수영장에서 벌어진 사고 이후 지수는 다시 세계와 불화한다. 그는 몸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통제에 능한 마른 여자가 되어 먹고 굶고 토하고 통증을 겪는다. 이유 모를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그는 자신의 최초의 기억이 머무는 곳으로, 호랑이 굴로 스스로 간다.
살면서 겪게 되는 많은 일에 원인이 없음에도 몸에 문제가 생기면 세상은 그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라 말한다. 몸이 너무 커지거나, 너무 작아지거나, 몸이 아프거나, 몸이 기능하지 않는 건 모두 너무 많이 먹어서, 너무 적게 먹어서, 운동하지 않아서, 마음을 편히 먹지 않아서 벌어진 개인적인 문제다. 몸이라는 감옥에 갇혀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 몸은 전쟁터가 된다. 2015년 이후 10년이 지났다. 2025년의 새로운 독자들이 다시 강화길이라는 호랑이굴의 입구에 선다. 소설 속 여자들은 해적판 소설과 설화와 도서관에 놓인 오래된 책을 쥐고 세계에 맞선다. '호랑이 뱃속에 들어간 여인들'은 살점을 베어물고 뚜벅뚜벅 전진한다. 나아갈 걸음걸음, 그렇게 '치유의 빛'이 비칠 것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늘 먼저 떠나는 삶을 선택한 발레리나 나탈리아.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난 아버지처럼 그는 도시에서 도시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끊임없이 떠돌며 세계 최고의 무용수가 되었다. 그러나 가장 눈부신 순간, 치명적인 사고로 무대를 떠난다. 그리고 2년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그녀 앞에 과거의 사람들이, 자신을 가장 높이 올리고 다시 밑바닥으로 끌어내린 사람들이 유령처럼 나타난다. 잊고 싶었던 사랑과 경쟁, 그리고 무대 복귀 제안. 자신을 망가뜨릴 뻔한 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영영 떠날 것인가. 떠도는 삶의 끝자락에서, 나탈리아는 인생 마지막일지도 모를 선택 앞에 선다.
<작은 땅의 야수들>로 2024 톨스토이문학상을 수상한 김주혜 신작. 소설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파리 세 도시를 무대로 완벽한 비상을 꿈꾸는 한 무용수의 치열한 생을 따라간다. 야수가 포효하던 작은 땅에서 독자의 심장을 뛰게 했던 작가는, 이번엔 밤새들이 날아오르는 러시아의 발레 도시로 우리를 데려간다. 시공간이 달라져도 고통 속에서 인간이 끝내 품어내는 존엄과 열망, 삶의 정수를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화려하고 대담한 문체는 여전하다. 가난과 결핍을 딛고 세계 최고의 프리마 발레리나가 되었지만, 그에 따르는 대가 또한 짊어져야 하는 나탈리아. 예술가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비추는 이 이야기는 시련 속에서도 끝내 품위를 잃지 않는 인간의 숭고함에 대한 비유이자, 깊은 상처를 감내할 만큼 간절한 순간을 지나온 우리 모두의 찬란한 삶에 대한 은유다.
<달려라, 아비>(2005), <바깥은 여름>(2017)의 소설가 김애란이 2020년대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8년 만에 소설집을 엮었다. 2020년대는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시작됐다. 세계는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풀었고, 이 돈은 가상화폐와 부동산으로 몰렸다. <성탄 특선>의 (<침이 고인다>(2007) 수록) 성탄 특수에 모텔을 구하지 못해 떠돌던 연인들과, 자취집에서 고립감을 느끼던 <너의 여름은 어떠니>의 청춘도(<비행운>(2012)) 2020년대를 함께 지났을 것이다. '방'의 문제에 눈이 밝은 소설가는 여전한 감각으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의 속시끄러움을 포착한다.
사회에 어느정도 진입한 이들은 좀 더 능숙해진, 때가 탄 눈으로 세계를 본다. <홈 파티>의 파티 호스트 '오대표'는 '계산이 정확하신 분'이고, <숲속 작은 집>의 남편 '지호'는 '어려서부터 몸에 밴 귀족적 천진함'이 있는 사람이다. 그들의 미감에 머무는 서사적 윤기를 알아채기도 하고, 그들의 천진한 잔인함을 구분할 수도 있는 위치에서 인물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김애란다운 가차없는 눈으로 스스로를 본다. 2020년대를 함께 지나는 독자는 그 시선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게 된다. 물가가 싼 이국에 탄소발자국을 흩뿌리며 휴양을 가서, 착취적인 1세계 시민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팁 3천원에 내가 너무 '호구'가 되는 것 같아서 쪼잔해질 때의 복합적인 부대낌이 김애란의 소설을 읽는 내내 살아난다.
전쟁 경험에서 '강남'까지 도달한 박완서의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멀미를 김애란의 소설에서 읽는다. 김애란은 다섯번째 소설집을 엮으며 '여러 계절을 나며 사람과 풍경이, 시절과 가치가 변하는 걸 보았습니다'라고 작가의 말에 적었다. <좋은 이웃>에 인용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이 말하는 '가치'와 2020년대는 얼마나 먼지 감각하며 우리가 선 자리를 들여다보면 좋겠다. 2025년, 우리는 김애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작들에서 기술 발달에 따른 미래의 변화를 완벽하게 예측했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신작. AI의 무섭도록 빠른 발전이 매일같이 인류의 삶을 바꿔놓고 있는 지금 이 시점, 그의 미래 예측이 시의적절하게 도착했다. 이번 책에서 그는 우리 앞에 훌쩍 다가온 새로운 세계에 대해 말한다.
20년 전 <특이점이 온다>에서 기술의 혁신이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허물 것이라 주장하여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켰던 그는 이번 책에서 자신의 주장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하며 논지를 이어간다. 기계와 결합한 인간은 이제 무엇이 되는 걸까? 수명, 노동, 산업, 부, 권력, 복지, 안보... 우리의 모든 것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것인가. 커즈와일은 인류라는 종의 미래를 그린다.
왼쪽 청력이 약한 '나'를 위해 누나는 늘 내 왼편에 서 주었다. 그런 누나는 여름 방학에 친구와 놀러 갔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싸움이었다는 사실은, 누나와 나만 아는 비밀이었다. 누나 방에 들어갔던 날, 누나가 아끼던 카우보이모자에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가 시키는 대로, 서랍 속 누나의 노트를 펼쳤다. 누나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기로 하고 방을 나섰다.
누구나 살아가며 사랑하는 가족, 아끼는 친구 혹은, 소중한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겪는다. 그 이별이 남긴 슬픔을 껴안고 살아야 할까, 아니면 벗어나기 위해 애써야 할까. 주인공 '강산'은 누나가 하지 못한 일을 대신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누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이전에는 몰랐던 누나의 모습을 서서히 알게 된다. 그리고, 누나의 사람들과 누나를 추억하며 함께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아이가 슬픔에만 갇히지 않고, 한 걸음 성장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모든 이에게, 조용히 건네는 위로의 이야기이다.
도립 호지로 고등학교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매년 5월 열리는 창립 기념 문화제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장소인 옥상을 희망한 단체는 평화적이면서도 명확하게 승패가 갈리는 게임으로 대결하고, 우승한 단체에 옥상 사용권이 주어진다. ‘바보(愚)와 연기(煙)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라는 속담에서 유래한 ‘구엔(愚煙) 시합’. 올해 결승에는 학생회의 오픈 카페 ‘킬리만자로’와 1학년 4반의 카레점 ‘가람마살라’가 진출해 있다. 2년 연속 구엔시합에서 우승한 학생회 대표의 상대는 어딘가 허술해 보이면서도 유유자적한 1학년 신입생 이모리야 마토, 결승 시합의 종목은 ‘가위바위보로 계단 오르기’다. 단, 45개의 계단 가운데에는 양측 참가자가 임의로 설정한 ‘지뢰’가 설치되어 있고, 그 지뢰가 설치된 계단에 멈추면 10계단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익숙한 놀이에 추가된 변형 규칙, 그리고 서로의 허를 찌르는 심리전이 펼쳐진다. 과연 축제의 왕좌 옥상을 차지할 단체는 어디일까. 그런데, 이게 이렇게까지 진지하고 치열해야 할 일일까.
일본 4대 미스터리 랭킹을 제패하고 대중소설이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수상하며, 나오키상 후보까지 포함하면 총 11개의 상에 이름을 올린 기념비적인 작품. ‘가위바위보로 계단 오르기’를 시작으로 카드를 뒤집어 짝 맞추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익숙한 놀이를 바탕으로 변형된 규칙들이 적용되어 치열하고 감각적인 두뇌 배틀을 펼친다. 겉보기와는 달리 승부에 강한 이모리야 마토는 학교 축제 자리 선정을 위한 게임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이후 새로운 상대와 새로운 게임을 거듭해 가고, 차례차례 강자들을 쓰러뜨린 이모리야의 앞에 예상치 못한 최강의 상대가 나타나는 구조는 소년 만화의 왕도적 전개와 닮았다. 젊은 나이와 특유의 스타일 덕분에 ‘헤이세이 시대의 엘러리 퀸’이라 불렸던 작가는 이 작품으로 ‘레이와 시대의 최고 재미’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얻었다. 치열한 두뇌 배틀 속에서 주고받는 전략과 전술, 수읽기와 심리전이 전하는 압도적인 재미.
소설은 국제우주정거장을 배경으로 하루, 지구를 16번 도는 90분 간격의 궤도 속에서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가 보내는 시간을 따라간다. 열여섯 번의 일출과 열여섯 번의 일몰. 잇따르는 대륙과 다가오는 바다, 빙하와 사막, 가을과 봄을 지나며 여섯 우주비행사는 무중력 상태에서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지구로부터 들려오는 삶과 죽음, 전쟁과 자연재해의 소식을 접한다. 독자는 그들과 함께 떠오르는 태양과 회전하는 지구, 창밖으로 보이는 빙하와 사막, 태풍의 소용돌이를 마주한다. 한없이 고요한 우주 속에서 체감하는 인간 삶의 연약함이 그들의 대화와 두려움, 꿈을 채운다. 그들은 묻기 시작한다. 지구가 없는 생명이란 무엇일까? 인류가 없는 지구란 무엇일까? 우주여행의 새 시대에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써 내려가고 있는 걸까? 서로 돌보고 협력해 고도의 진보에 도달한 인간의 힘은 무한히 성장하고 소비하려는 욕망을 넘어설 수 있을까?
2024년 부커상 수상작.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공전하는 여섯 우주비행사의 하루. NASA와 ESA의 기술 자료, 실제 우주비행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된 이 소설은 정밀하면서도 아름다운 언어로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의 풍경과 의미를 새롭게 드러낸다. 스물네 시간 동안 열여섯 번의 일출과 열여섯 번의 일몰을 마주하는 기이한 감각, 최신 공학 기술의 정점인 우주선에서 더없이 작고 평범한 지구를 낱낱이 보는 일의 의미, 흉포하고 맹렬한 검은 우주에 몸을 맡길 때 찾아오는 완전한 평화와 위로가 아름답고 서정적인 언어로, 리드미컬하게 펼쳐진다. 우주정거장을 지구 궤도에 붙들어 놓는 중력처럼 강한 문장의 힘으로 독자를 이끄는 소설.
사람들은 변화를 꿈꾸지만, 정작 그 변화를 삶 속에 들여놓는 데는 망설임이 따른다. 성장하길 원하면서도 익숙한 자신을 벗어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많은 이들이 성공을 동경하지만, 막상 구체적인 실천 앞에서는 주저하게 된다. 스티븐 바틀렛은 바로 그 지점에 주목했다. '하고 싶다'는 말과 '이미 하고 있다'는 행동 사이, 이 작은 간극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다고 말이다. 20세에 창업해 26세에 회사를 3,000억 원 규모로 키운 그는,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유발 하라리, 미스터 비스트, 로버트 그린 등 세계 정상급 인물들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성공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그 본질을 누구나 실천할 수 있도록 33가지 법칙으로 정리해냈다.
이 책은 화려한 전략보다 일상 속 작은 실천에 집중한다. 심리학, 행동경제학, 신경과학 등 최신 연구를 토대로 정리된 법칙들은 단지 사업가를 위한 지침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나침반이다. 업무 효율, 인간관계, 건강, 목표 설정 등 삶 전반을 관통하며, 그 어느 부분도 추상적인 조언에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말한다.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인식을 먼저 바꿔야 한다"라고. 결국 이 책은 '언젠가'의 변화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당신이 이 책을 손에 든 순간,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더 나은 삶은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결정과 실천 속에 숨어 있다. 어제의 당신이 아닌, 내일의 당신을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이 책의 첫 장을 펼칠 차례다.
문득 나에게 물어보게 된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사람인가, 아직도 '하려는 중'에 머물러 있는 사람인가. 오늘부터는, 그냥 해보려 한다. 망설임 없이.
이스라엘 점령하에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획기적인 논픽션 그래픽노블 <팔레스타인> 2002년 출간된 이후 23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 앞에 선다. 이 책은 2002년 국내 첫 출간 당시 팔레스타인의 참상과 진실을 알리며 한국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팔레스타인>은 <쥐>, <페르세폴리스>와 함께 그래픽노블 3대작으로 손꼽히며, '만화 저널리즘' 장르를 개척한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세계적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가 인정하고 추천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다.
조 사코는 개정판 서문에 부쳐 30년 전의 팔레스타인과 지금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아직도 진행 중임에 슬퍼한다. '아직도'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조 사코가 가자 지구를 돌아다니며 만화를 기획했을 때만 해도 건물은 서 있었고 학교와 병원은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제노사이드라고 할 만큼의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한국의 독자들은 뉴스 헤드라인으로서의 전쟁이 아니라 실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과 얽히게 될 것이다. '남들 이야기'가 아니게 되고 인간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 이 두꺼운 책, 페이지마다 있다.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1994년부터 시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심보선이 <오늘은 잘 모르겠어> 이후 8년 만에 시집을 출간했다. 2018년 유희경의 <당신의 자리 - 나무로 자라는 방법>을 1번으로 출간을 시작해 조해주, 한연희 등의 첫 시집을 소개하는 등 믿음직한 이름들로 목록을 채운 '아침달 시집' 시리즈의 50번째 책이다. '다시는 못 쓸 것 같았다. / 다시 쓸 수 있어 기뻤다.' 고, 드물게 적는 시인의 말에 시인된 이가 적었다.
1부의 첫 시 <쓰지 못했다>는 '그동안 끔찍한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졌는데'로 시작된다. 쓰지 못할 이유는 많다. 독서광 아빠는 나를 버렸고, '책 때문에 나는 이 모양 이 꼴이다'.(<책에 따라 살기> 부분) '삶/쓰기는 분주했고 번잡했고 버거웠다. 삶/쓰기의 행복은 내란의 불길에 그을렸다.'(129쪽)고 산문에 적었듯, 시인은 사랑, 용서, 분노 같은 개념을 두고 고투한 흔적을 포장하지 않은 채 시집에 흐르게 둔다. 그는 다시 책상에 앉아 제 몸에 밑줄을 긋는다. 그것은 아직 시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이유로 시를 읽는 이들의, 너무 슬픈 영혼을 기억하기 위해 시는 이곳에 섰다.
우리가 주저앉아 통곡하며
가슴을 치던 이곳에서
순한 사람들이 살아남았음을
나중에 기억할 수 있도록
<섬망> 부분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 교육자로 이름 높은 김준엽 선생은 제자들에게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격동하는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어느 개인의 삶이 역사에서 완전히 유리되어 독존할 수 있었겠는가만, 그 농담이 특히 짙었던 생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1980년 ‘무림사건’의 주동자였던 문학평론가 김명인이 45년 세월을 관통해 써낸 자전적 기록이자 사회사적 성찰의 회성록(回省錄)이다. 2020년 무죄 판결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고문과 투옥, 출판운동과 문학평론, 내부 망명과 사회 참여 사이를 오가며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리고 2024년, 또 한 번의 비상계엄을 경험한 시점에서, 자신과 세상의 변화를 되짚으며 '혁명운동가'에서 '늙은 시민'으로의 이행을 기록한다. 책은 단순한 회고를 넘어, 개인의 생이 어떻게 사회와 겹쳐지고 흔들리는지를 면밀하게 탐색한다.
김명인은 이 책을 회고록이 아닌 회성록이라 부른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삶을 구성한 역사적, 정치적, 윤리적 조건들을 정면에서 성찰하고 해부하기 때문이다. 그가 겪은 국가폭력과 학생운동, 좌파의 궤멸과 출판운동, 늦은 환멸과 희망은 곧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공유하는 ‘낭만적 우울’의 풍경이다. 그리하여 한때 이 책의 제목이 될 뻔했던 멜랑콜리아 로맨티카 - 낭만적 우울이지만, 작가는 2024년 겨울 또 한 번의 계엄과 이에 맞서는 젊은 시민들의 놀라운 투쟁을 겪으며 그것이 놀랍게도 씻은 듯 사라졌고, 책의 제목도 바뀌었다고 말한다. 치열한 자기비평과 사회 분석을 결합한 이 책은 지난 반세기의 한국 사회를 가장 내밀하고도 날카롭게 되짚는 기록이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시민에게 전해지는 격려와 연대의 손길이다.
'리버뷰'는 개인의 기억이나 생각을 디지털화해 가상 현실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네트워크 세계이다. 가족 모두가 리버뷰로 입주한 뒤, 재이는 두 마리 고양이와 현실에 남는다. 홀로 남겨진 일상 속에서 외로움을 견디던 어느 날, 재이의 집 창밖에 한 마리 기린이 찾아온다. 재이는 기린에게 '럭키'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교감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동물과 소통할 수 있었던 재이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게 되자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기린과의 만남은 재이 안에 잠들어 있던 감각을 다시 일깨우고, 진짜 자신을 마주하게 만든다. 한편, 리버뷰 입주를 거부하고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 친구 소라와의 재회는 또 다른 전환점을 불러온다. 재이와 소라가 우연히 얽힌 사건을 함께 파헤쳐 가는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몰입감은 한층 더해진다. <창밖의 기린>은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동물과 인간의 관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체 뭐가 다른가?" 어떤 이는 운이라 하고, 어떤 이는 태생적 재능이라 한다. 하지만 수십 년간 억만장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해온 저자가 내린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이 있다는 것, 그들은 결정을 미루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긴다. 이 책은 그런 거대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곁에서 직접 보고 배운 생생한 기록이자, 평범한 사람들도 그들의 사고방식을 체화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실용적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부자 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건 '최고의 나'가 되는 것이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들뿐 아니라 에티오피아 출신의 주차관리원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놀라운 공통점을 보여준다. 그들은 모두 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든 행복을 선택할 줄 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저자 자신이 이들을 관찰하고 배우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솔직하게 담아낸 이야기들은 성공의 본질을 새롭게 깨닫게 한다. 그 본질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자세에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문제는 누구와 함께하느냐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이미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게 된다.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그들의 행동력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억만장자가 되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이 당신에게 그 변화의 시작점이 되기를, 그리고 '최고의 나'를 향한 여정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늘 영향을 받기만 하며 살게 될까. 적어도 지금은, 좋은 사람들 곁에서 배우고 싶다.
홍콩의 청킹맨션은 뭐랄까, 말하자면 영화감독이라면 한 번쯤 영화의 배경으로 탐낼만한 곳이다. 국제적인 비공식 경제의 거점으로 돈이 활발히 오가는데, 이곳의 거주자들은 대체로 불법 체류, 불법 노동을 하고 있거나 불법이라고 불릴 만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이들의 경제 상황은 모두 제각각이다. 하루에 6천 불을 버는 부자도 있고 한 끼 챙겨먹 기 힘든 사람도 있다. 교류는 활발하지만 서로를 깊이 파고드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각자의 불법, 부당함을 파헤치지 않기는 이곳의 기본 원칙 중 하나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계다.
이 공간 속에서 문화인류학자인 저자 오가와 사야가가 주목하는 지점은 탄자니아인들의 커먼즈다. 사야카는 청킹맨션의 보스라 불리는 카라마와의 교류를 시작으로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 커뮤니티에 대한 연구를 해나간다. 보통 커먼즈라 하면 떠오르는 고정적 이미지가 있다. 안전하고 균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공동체. 이곳의 커먼즈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사람들은 서로 친하지만 깊이 믿지 않는다. 믿지 않더라도 서로를 돕는다. 즉각적 보답은 바라지 않고 서로의 위기에 매번 기꺼이 도움의 돈을 내밀고, 심지어 배신을 당한 적이 있어도 또다시 손을 잡는다. 신뢰 없는 서로를 영원히 도움으로써 모두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이 모순적인 공동체는 어찌하여 가능한가?
청킹맨션에 거주하며 이들을 관찰하는 인류학자의 관점으로 쓰인 이 책은 마치 소설처럼 눈앞에 보이는 듯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친다. 매력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사회의 관계적 상식으로는 의문이 생기는 지점들이 턱턱 생겨나고, 그 지점들에서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차이와 통찰을 발견하게 된다. 이기성과 이타성의 경계가 모호한 이 공동체에서 '대안'을 찾기엔 아직 조급한 측면이 있겠으나 '희망'을 캐내기엔 충분할 것 같다. 여러모로 흥미롭고 매혹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