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살아남아 나이 들 자유"
돼지는 생후 6개월 즈음 도축된다. '새벽이생추어리'에 사는 돼지 새벽이는 3년 이상 생존해 예외적인 긴 삶을 경험하고 있다. 농장과 동물원 등에서 갇힌 삶을 사는 동물들이 평온한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공간, 일종의 '요양원'인 생추어리에서 사진작가 이샤 레슈코는 자신을 사로잡는 동물들의 얼굴을 만났다. 정중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눈 먼 칠면조 간달프 (초상 42, 101쪽)의 얼굴 같은 것을. 그는 미국 전역의 생추어리에서 만난 동물들의 얼굴을, 고요하고 품위 있는 쇠락의 표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동물들의 이름과 각자의 사연도 함께 실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허락을 구하며 작가는 사진을 찍는 행위와 사냥하고 총을 쏘는 행위가 모두 슛shoot이라는 동사를 사용한다는 걸 깨닫고 얼굴이 붉어진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구조된 동물의 영혼엔 아직 상흔이 남아 있고, 그들은 목표물을 사냥하듯 사진찍는 이를 경계한다. 작가는 오래 들여다보며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지는 것으로 방법을 찾는다. 염소가 반사판을 씹어버리는 순간까지 기다려 얻은 한 컷엔 각자의 개성과 고요한 평화가 담겨 있다. 공황발작을 앓는 말 버디, 자신을 돌봐준 사람을 보고 신나서 껑충 뛰는 돼지 제레미아, 호기심 많고 애정을 갈구하는 염소 멜빈. 이들에겐 각자의 격이 있고, 모두가 다른 존재다.
카메라가 동물을 볼 때, 동물의 눈도 우리를 본다. "동물이 우리를 바라볼 때 우리는 그들에게 드러난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동물에게 노년을 허하지 않는 세상에서 기적적으로 노년을 맞은 동물들의 초연한 얼굴이 침묵한 채 말을 건넨다. 홍은전, 하재영, 사이 몽고메리, 피터 싱어 등의 작가가 이 사진집을 추천했다.
- 예술 MD 김효선 (2022.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