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세계였으니, 나도 너에게 세계를 줄 거야."
보호자가 없는 우수한 아이들을 선발해 우주공학 연구원으로 육성하는 학교 '제네시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제네시스에 입학한 이들에게, 달은 저마다의 꿈으로 마음 속에 자리한다. 머리를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에게 달은 남의 시선 따윈 신경쓰지 않고 빨간 구두를 신고 맘껏 춤을 출 수 있는 곳이다. 두 다리 대신 의족을 가진 소년에게 저중력의 달은 자신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달에 파견된 소녀에게 달은 지워지지 않는 글씨를 새겨 지구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공간이고, 비밀을 알게 된 한 소녀에게 달은 소중한 사람을 피신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아득한 우주 어딘가로부터 지구를 파괴할 소행성이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언제나 궤도의 바깥에 자리하고 있던 제네시스의 아이들은 '우리'가 되어 서로를 지키려 한다. "몰랐더라면, 아니 이 모든 걸 미리 알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에야 알게 된 것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그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라고 되뇌며 온 힘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이들의 용기가 기어코 만들어 내는 것들. 한 줌의 온기와도 같은 비망록의 마지막 장을 덮고 생각한다. 폭력과 혐오로 점철된 시대 속에서 조금은 세계를, 인간의 마음을 믿어보고 싶다고.
- 소설 MD 권벼리 (2021.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