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김명순의 뜨거운 문장,
거대한 사랑의 이야기
자유롭고자 했으나 다만 외로웠던 예술가 김명순,
심연을 뒤흔드는 14편이 수록된 단 하나의 소설집
한국 최초의 여성 근대소설가이자 시대를 앞서간 여성 예술가 김명순의 소설이 시인 박소란의 편역으로 백 년 만에 되살아난다. 이는 김명순이 1918년부터 1936년까지 발표한 에세이를 묶어 선구적인 여성 예술가 김명순의 진면목을 새롭게 알린 『사랑은 무한대이외다』(핀드, 2023)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작업이기도 하다. 김명순은 정식으로 출간된 한국 여성 작가 최초의 작품집 『생명의 과실』(한성도서주식회사, 1925)을 펴낸바, 첫 책 출간 이후 백 년 만에 그의 작품세계를 한 권으로 조명할 수 있는 소설집이 묶였다는 것도 이 작업의 가치를 더한다.
박소란 시인은 근대 한글로 쓰인 김명순의 작품을 현대어로 번역하며 김명순이 지닌 특유의 문체를 지키면서도 김명순의 깊은 사유와 선구적인 통찰이 지금의 독자들의 마음에 좀 더 가닿을 수 있도록 단어와 문장을 섬세하게 매만졌다. 고심해 고른 14편의 작품 역시 일일이 원문을 대조해 완성도와 사료적 의미를 높였으며, 수록된 소설 중 김명순의 등단작 「의심의 소녀」뿐 아니라 그의 대표작 「나는 사랑한다」, 근대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작 「외로운 사람들」은 놓치지 말아야 할 수작이다. 또한 김명순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어로 쓴 소설 「인생행로난」을 찾아 문학평론가 권선영의 번역으로 이번 소설집에 함께 묶은 것도 특이할 점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특별히 김명순의 작품으로 연극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 배우 옥자연이 추천의 글을 덧붙였는데, 백 년 전 배우로도 활동했던 김명순의 작품을 현대 예술가로서 새롭게 읽은 감상이 뜨겁게 전해진다.
“그녀의 희망이, 설움이 번져온다. 나는 그토록 뜨거울 수 있을까. 불더미 속에서 내가 외치게 될 말은 무엇일까. 최후까지 붙들어야 할 그 말은.” (옥자연 추천사)
김명순은 누구인가?
1896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명순은 1917년 잡지 『청춘』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면서 등단 제도를 통해 문단에 데뷔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이며, 여성 최초로 작품집을 낸 시인,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번역해 국내에 최초로 소개한 번역가, 평론가, 극작가, 기자, 배우 등 다방면으로 활동한 다재다능한 작가이다. 하지만 그의 출신이나 안타까운 개인사를 두고 희롱하는 당대의 일부 작가들로 인해 글쓰기를 중단하고 1951년 일본에서 사망할 때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비운의 작가이기도 하다. 김명순은 『생명의 과실』(1925), 『애인의 선물』(1929 추정) 등 시, 소설, 희곡 등을 한데 묶은 작품집을 두 권이나 펴냈을 만큼 그 누구보다도 글쓰기에 열정적이었고, 시대를 앞서간 글을 써낸 놀라운 작가였다.
젊은 날
나는 사랑한다
분수령
일요일
꿈 묻는 날 밤
의붓자식(희곡)
의심의 소녀
조모의 묘전에
해 저문 때
손님
돌아다볼 때
모르는 사람같이
외로운 사람들
인생행로난
엮은이의 말
희종은 물 담기는 저수기를 바라보고 뿜어오르게 된 구조와 물 갈리는 이치를 생각하다가 자기의 번민과 그만 혼동해 저것도 우주의 한 전상(轉相)으로 지금 내 환경을 방불케 한다고 범연히 느꼈다. (「분수령」, 49면)
좋은 집이 탄다고 사람들은 서러워했다. 그러나 그 불더미 속에 소리 들려 이르되 “사랑하는 이여, 아름다운 말 전부는 너의 이름이다” 하고
“나는 사랑한다!”
“나는 사랑한다!” 하더라. (「나는 사랑한다」, 42면)
아― 답답스러운 밤이다. 아는 일을 다시 물으러 가는 것 아닌가. 그런 일이 실현된다 할지라도 그런 뒤에야 또다시 무슨 전투적 기분이 일어나랴. 적어도 앞으로 앞으로 싸워 나가는 것이 사람의 생활인데 꿈이 아니면 하늘에 그 훌륭한 꽃들이 어찌 피었으랴. (「꿈 묻는 날 밤」, 67면)
우리는 이미 깨뜨려지고 흐트려놓은 것을 정리하고 우리의 모든 관념을 새로 가진 후에 굳센 믿음으로 우리의 새로운 이상을 실현할 뿐이지요. (「손님」, 157면)
‘왜, 결합된 한 생명같이 한 법칙 아래 한 믿음으로 이 세상을 지나면서 하필 남북에 헤어져 있다가, 우연히 또 한성에 모이게 되어서도 만나지도 못하고 울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 하고 애달픈 은방울을 흔들었다. (「돌아다볼 때」, 167면)
그러나 그들은 세상이 믿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운명의 위협을 받아가면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발자국마다 피를 흘리면서 그들이 꿈꾸는 어떤 목표를 향해 걸어나간다. 이런 일이 세상에는 흔히 없는 일이요, 사람들은 다―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외로운 사람이 되었다. (「외로운 사람들」, 238면)
마치 큰 산봉우리 위에 오르는 사람들이 어떤 경우로 인해 한 곳에서 오르지 못하고 남북으로 나뉘어져 산봉우리를 향해 올라간다 하면, 거기서 아무리 오르고 또 오를지라도 봉우리 위에는 올라지지 않고, 반드시 그리운 벗이 같은 때에 같은 정도를 밟을 것인가 아닌가를 알고 싶을 것이다. (「외로운 사람들」, 239면)
좋은 집이 탄다고 사람들은 서러워했다. 그러나 그 불더미 속에 소리 들려 이르되낙인과 오해로 굴곡진 삶을 살았던 김명순의 소설에는 한결같이 발버둥 치는 인물들이 있다. 피가 끓고 눈물이 마르지 않는, 고결한 이상을 감당하려 하나 꺾이고 꺾이고 마는 학대받는 인물들. 그럼에도 희망하기를 그치지 않고, 아니하려야 아니할 수 없어 사랑에 온몸을 던지고야 마는 인물들. 20세기 초의 조선, 그 역동적인 과도기를 살아내며 온 우주의 법칙과 전 인류의 예술과 동서고금의 철학을 탐구하고 싶었던 꿈 많은 정신이 남긴 글들을 읽노라면 증기를 뿜어내며 돌진하는 듯한 근대의 낭만주의가 참으로 숨 가쁘다.
“사랑하는 이여, 아름다운 말 전부는 너의 이름이다” 하고
“나는 사랑한다!”
“나는 사랑한다!” 하더라.
―「나는 사랑한다」 중에서
―옥자연 배우
여기 실린 열네 편의 소설을 읽다보면 자연히 알게 됩니다. 명순 언니가 온 마음을 쏟아 그려낸 ‘사랑’이 무엇을 지시하는지. 얼마나 넓고 깊은지. 그것은 동경이자 이상이자 신념인 것. 오롯한 한 존재로서 삶을 바로 세우기 위한 몸부림인 것. 끝없이 스스로를 갈고닦는 것. 혹여 죽더라도 멈추지 않는 것.
이 거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이제야 비로소 함께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뜨거워집니다.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한 김명순, 언니의 ‘첫’ 소설집인 것입니다. (부분)
―박소란 시인
김명순의 에세이집 『사랑은 무한대이외다』 작업 이후 2년 만에 박소란 시인과 함께 다시 김명순의 소설을 묶는다. 김명순의 작업은 여느 편집 작업과는 다르게 진행된다. 박소란 시인과 몇 주 동안 마주 앉아 김명순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현대어로 작가의 뜻이 충분히 전달되는지를 계속 살피게 되는 것이다. 근대의 어려운 한자어와 지금은 사라진 단어들, 그 의미를 헤아리기 위해 한 문장을 붙들고 한 시간을 넘겨 토론하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생활했던 김명순의 이력, 동서양 철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아 전 분야에 걸쳐 박학했던 그의 문장을 해석하자면 단순한 검색을 넘어 추리에 추리를 거듭해야 한다. 그렇게 단어 하나의 실마리를 찾고 나면 “명순 언니 대단하네” “명순 언니는 틀리지 않아” 되뇌며 시인과 크게 웃었다. 그 흔적들은 웃음기를 빼고 간혹 각주에 담기도 했다.
우리는 이 작업을 왜 하는 걸까? 가끔 서로에게 물었다. 그건 아마 김명순이 그저 좋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롭고자 했으나 다만 외로웠던 언니에게 우리라도 친구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겠고. 백 년이 지나도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마음이 궁금해 읽고 또 읽었다. 책을 작업하면서 우리가 읽은 언니의 마음이 조금 달랐을 수는 있어도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이 책에 마음을 쏟고, 쏟았다.
―김선영 편집자
1896년 1월 20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17년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청춘』의 현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한국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로 불린다. 등단 이후 김명순, 김탄실, 망양초, 망양생, 별그림 같은 필명으로 시, 소설, 산문, 평론,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발표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고 보들레르의 시를 번역하는 등 외국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피아노를 잘 치고 독일어로 곡을 만들 만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여성 작가 최초로 창작집 『생명의 과실』(1925) 『애인의 선물』(1929 추정)을 펴냈으며, 신문기자,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공부와 집필에 힘썼으나 모욕적인 소문의 희생자가 되어 결국 글쓰기를 중단했다. 생의 마지막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1951년 도쿄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인.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한 사람의 닫힌 문』『있다』『수옥』, 산문집 『 빌딩과 시』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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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188mm / 무선제본 / 376쪽 내외 / 2025년 5월 23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