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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종교/역학

이름:김기석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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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당신은 바다에 많은 길을 내시어도>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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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낯선 곳에 가면 사람은 누구나 취약해진다. 그 장소와의 연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곳을 잘 아는 길 안내인이 동행한다면 긴장감은 설렘과 기대로 바뀐다. 낯익은 장소를 걸을 때 사람들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미 알고 있는 곳이기에 별다른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익은 곳에 숨겨진 낯섦을 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눈을 통해 보는 순간 세상이 달리 보인다. 성경은 우리에게 낯선 세계인 동시에 낯익은 세계이다. 성경 속 여행을 떠날 때 좋은 길 안내자를 만나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이다. 박대영 목사는 그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탁월한 안내자이다. 안내자이지만 실은 영혼의 순례자이다. 그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사도행전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우리가 어떤 세계에 초대받았는지를 자각하게 될 것이다.
2.
앞만 보고 질주하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작고 사소하고 여린 것들. 구질구질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 속에도 하늘과 땅, 구름과 바람이 깃들어 있다. 그것을 자각할 때 일상은 기적이 된다. 세상 도처에 널린 기적을 보는 사람, 그를 우리는 시인이라 부른다. 박송이 시인의 눈길을 따라 세상을 두루 살피다보니 눈물겨운 현실조차 아름답게 보인다. 현실의 각박함을 숨기는 아름다움의 환영이 아니라 아픔과 설움까지 감싸 안아 넘어서도록 해주는 치열한 아름다움 말이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
3.
외길을 따라 걷는 일은 단조롭기는 하지만 번뇌는 많지 않다. 갈림길 앞에 설 때는 잠시 망설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길을 택해 걷는다. 문제는 사방팔방으로 열린 길 앞에 설 때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기웃거리는 동안 방향감각을 잃은 채 주저앉고 만다. 낯선 세계를 찾아가기보다는 익숙한 길 위에 집을 짓고 머물기로 작정한 것이다. 지금 우리 형편이 그러하다. 예수를 길이라 고백하면서도 그 길을 걷지 않는다.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신학은 인접 학문과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담론 지평에서 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고립과 단절이 심화되면서 신학의 삶의 자리인 교회는 점점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150년 전에 태어난 영국 사상가 G. K. 체스터턴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단』이 부정의 방식으로 진리에 다가서는 책이라면, 『정통』은 자기를 사로잡고 있는 신앙의 핵심을 긍정의 방식으로 서술하는 책이다. 저자는 자기의 내면과 세상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그 속에 깃든 진리를 탐구한다. 그가 그러한 사유의 모험을 통해 당도한 세계는 기쁨의 세계다. 체스터턴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가 전개하는 논리의 세계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의 안내를 따라 차분히 사상의 광맥을 탐색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피상적인 세계 너머에 있는 더 깊은 세계와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세계와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소비사회가 건네는 행복의 환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이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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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을 따라 걷는 일은 단조롭기는 하지만 번뇌는 많지 않다. 갈림길 앞에 설 때는 잠시 망설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길을 택해 걷는다. 문제는 사방팔방으로 열린 길 앞에 설 때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기웃거리는 동안 방향감각을 잃은 채 주저앉고 만다. 낯선 세계를 찾아가기보다는 익숙한 길 위에 집을 짓고 머물기로 작정한 것이다. 지금 우리 형편이 그러하다. 예수를 길이라 고백하면서도 그 길을 걷지 않는다.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신학은 인접 학문과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담론 지평에서 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고립과 단절이 심화되면서 신학의 삶의 자리인 교회는 점점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150년 전에 태어난 영국 사상가 G. K. 체스터턴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정통』에서 자기의 내면과 세상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그 속에 깃든 진리를 탐구한다. 그가 그러한 사유의 모험을 통해 당도한 세계는 기쁨의 세계다. 『영원한 인간』은 그러한 사유의 행로가 당도한 세계 인식을 인류 전체의 영적 여정으로 확장하여 풀어낸다. 유려하고 장엄하다. 체스터턴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가 전개하는 논리의 세계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의 안내를 따라 차분히 사상의 광맥을 탐색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피상적인 세계 너머에 있는 더 깊은 세계와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세계와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소비사회가 건네는 행복의 환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이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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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을 따라 걷는 일은 단조롭기는 하지만 번뇌는 많지 않다. 갈림길 앞에 설 때는 잠시 망설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길을 택해 걷는다. 문제는 사방팔방으로 열린 길 앞에 설 때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기웃거리는 동안 방향감각을 잃은 채 주저앉고 만다. 낯선 세계를 찾아가기보다는 익숙한 길 위에 집을 짓고 머물기로 작정한 것이다. 지금 우리 형편이 그러하다. 예수를 길이라 고백하면서도 그 길을 걷지 않는다.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신학은 인접 학문과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담론 지평에서 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고립과 단절이 심화되면서 신학의 삶의 자리인 교회는 점점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150년 전에 태어난 영국 사상가 G. K. 체스터턴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기독교 변증가로서 당대의 지식인, 예술가, 문학인들의 사상과 씨름하는 일을 꺼리지 않았다. 『이단』은 그들의 빛나는 성취를 따라가면서도 그들의 한계와 오류를 포착하여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이단’ 하면 사이비 종교가 떠오르게 마련이지만, 체스터턴이 말하는 이단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의 깊은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가리킨다. 체스터턴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가 전개하는 논리의 세계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의 안내를 따라 차분히 사상의 광맥을 탐색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피상적인 세계 너머에 있는 더 깊은 세계와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세계와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소비사회가 건네는 행복의 환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이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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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을 따라 걷는 일은 단조롭기는 하지만 번뇌는 많지 않다. 갈림길 앞에 설 때는 잠시 망설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길을 택해 걷는다. 문제는 사방팔방으로 열린 길 앞에 설 때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기웃거리는 동안 방향감각을 잃은 채 주저앉고 만다. 낯선 세계를 찾아가기보다는 익숙한 길 위에 집을 짓고 머물기로 작정한 것이다. 지금 우리 형편이 그러하다. 예수를 길이라 고백하면서도 그 길을 걷지 않는다.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신학은 인접 학문과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담론 지평에서 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고립과 단절이 심화되면서 신학의 삶의 자리인 교회는 점점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150년 전에 태어난 영국 사상가 G. K. 체스터턴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기독교 변증가로서 당대의 지식인, 예술가, 문학인들의 사상과 씨름하는 일을 꺼리지 않았다. 『이단』은 그들의 빛나는 성취를 따라가면서도 그들의 한계와 오류를 포착하여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이단’ 하면 사이비 종교가 떠오르게 마련이지만, 체스터턴이 말하는 이단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의 깊은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가리킨다. 『이단』이 부정의 방식으로 진리에 다가서는 책이라면, 『정통』은 자기를 사로잡고 있는 신앙의 핵심을 긍정의 방식으로 서술하는 책이다. 저자는 자기의 내면과 세상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그 속에 깃든 진리를 탐구한다. 그가 그러한 사유의 모험을 통해 당도한 세계는 기쁨의 세계다. 『영원한 인간』은 그러한 사유의 행로가 당도한 세계 인식을 인류 전체의 영적 여정으로 확장하여 풀어낸다. 유려하고 장엄하다. 체스터턴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가 전개하는 논리의 세계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의 안내를 따라 차분히 사상의 광맥을 탐색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피상적인 세계 너머에 있는 더 깊은 세계와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세계와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소비사회가 건네는 행복의 환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이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7.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삶의 길을 찾기 위해 그 숨겨진 층위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신학자이자 목회자이고, 탁월한 화가였던 지거 쾨더는 성경 속에 언표된 세계를 근거로 하여 언표되지 않은 세계를 드러내 보인다. 그의 캔버스는 그런 탐색의 현장이다. 그의 그림이 성서의 재현이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모든 그림이 그러하듯 그의 그림에는 그의 의식을 스치고 지나가는 신학적 사유가 녹아들어 있다. 이 책의 공동 저자들은 시각적 이미지를 언어적으로 재현하는 에크프라시스(ekphrasis) 과정을 통해 독자들 앞에 다양한 신학적 해석의 향연을 베푼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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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 경험 세계를 벗어나 사유하기 어렵다.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성경을 보는 방식은 같을 수 없다. 남성과 여성의 시선 또한 그러하다. 여성들의 시선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가 풍부해질수록 믿음의 지평이 확장되리라 확신한다.
9.
거룩할 ‘성’과 날 ‘경’자로 구성된 성경(聖經)은 우리 삶이 혼돈의 심연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지켜주는 수직의 중심이다. 사람들이 성경에는 오류가 없어야 한다고 믿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성경을 읽다가 모순되는 지점을 발견하는 순간 경건한 사람들은 마치 연모하던 이의 비밀스러운 모습을 본 것처럼 민망해한다.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진 이들은 ‘잘코사니!’ 하면서 공격의 빌미를 삼는다. 민망해할 것도 없고, 쾌재를 부를 것도 없다. 김근주 교수와 권연경 교수의 안내를 받아 성경 속을 거닐다 보면 그 모순 속에 담긴 삶의 심오함에 가닿을 것이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기독교인에게도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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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이란 믿음의 고백을 삶으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번역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때 믿음은 허위의식이 되기 쉽다. 저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신앙적 통념을 성서 신학이라는 체로 걸러내 신앙의 알짬을 드러낸다. 그 알짬을 교리적 언어가 아닌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기에 그의 언어는 경쾌하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책을 우리 신앙생활을 비추어 보는 거울로 삼으면 좋겠다.
11.
“《산티아고 다이어리》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맺은 우정의 이야기다. 순례자라는 공통점이 없었더라면 도무지 만날 수 없었던 이들이 만나 우정을 나누고, 깊은 환대를 경험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카미노는 적대감이 넘치는 세상에서 환대의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하는 일종의 학교다.” - “추천의 글” 중에서
12.
그는 언제나 우리가 처한 삶의 현장에 눈길을 준다. 절망과 어둠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의 삶의 자리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땅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차마 외면하지 못하셨던 하나님처럼 그도 땅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13.
『나를 넘어서는 힘』은 우리를 새로운 시작으로 초대한다. 기도, 말씀 묵상, 분별, 그리고 대화라는 신앙의 기초에 충실할 때 탁류가 서서히 맑아질 것이다. 이 책이 던지고 있는 질문들에 성실하게 응답하는 과정 자체가 신앙과 삶에 대한 성찰 행위다.
14.
“신들을 찾아 나선 여행길이 고되어서 지쳤으면서도, 너는 ‘헛수고’라고 말하지 않는구나”(사 57:10, 새번역). 이사야서에 나오는 이 말씀이야말로 우리의 현실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 아닐까? 분주하게 살고 있지만 마음은 헛헛하고, 거칠고 사나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동안 마음의 고요함은 흔적도 없이 스러졌다. 이럴 때일수록 질주를 멈추고 가만히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빚다』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주목하지 않았던 근원의 자리로 우리를 이끈다. 우리 시대 어둠의 뿌리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그 어둠을 뚫고 솟아 나오는 빛을 보여 준다. 심연의 가장자리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을 수 있는 힘은 사랑으로부터 나온다.
15.
대림절기로부터 시작되어 연중 시기로 이어지는 교회력은 그리스도인의 시간 경험의 원형이다. 순환하는 동시에 유일회적으로 주어진 그 시간을 영원의 빛 안에서 살아 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과제이다. 상투어로 변한 신앙의 언어들, 곧 무기력한 말들의 동어반복은 새로운 사건을 일으키지 못한다. 유진 피터슨은 전통적인 신앙의 언어들 속에 깃들어 있는 비상한 메시지를 찾아내는 일에 탁월하다. 그는 “사람의 인생사 전체가 하나님의 어휘”라는 말로 그의 신학함의 핵심을 넌지시 드러낸다. 일상의 모든 시간 속에 깃든 하늘의 빛을 알아차릴 때 삶은 신비가 된다. 이 책은 그러한 신비에로의 초대이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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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심연”이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 실감 나는 시대이다. 희로애락애오욕의 온갖 감정에 끄달리며 사는 게 인생이다. 심연의 어둠에 사로잡힌 채 사는 이들도 있고, 심연의 공포를 견디며 빛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시편의 세계는 광대하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도 있고,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이들로 인해 터져 나오는 탄식도 있으며, 자기 삶의 비참함을 통회하는 절규도 있다. 그것이 다 우리 삶의 풍경을 형성한다. 시편은 탄식과 절규를 넘어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자기 삶을 긍정하는 자리로 우리를 초대한다. 모든 글은 저자의 성격을 반영한다. 김영봉 목사가 들려주는 시편 이야기는 잔잔하지만 단단하고, 나직하지만 울림이 크다. 그의 안내를 따라 시편의 세계를 주유하다 보면 어느새 삶이 가지런해짐을 느낄 것이다. 오랫동안 곁에 두고 싶은 좋은 책을 만난 기쁨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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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어떤 희망도 없어 보인다. 정말 그런가? 파커 파머는 그런 우리에게 십자가의 길을 가리켜 보이며 우상 없이, 값싼 위로 없이, 환상 없이 살아갈 용기를 내라고 말한다. 모순을 부둥켜안고 참사람의 길을 걸어갈 때 그 길 위에서 문득 예수와 만나게 될 것이다. 영원한 삶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 책이 그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는 이정표가 되어 주리라 믿으며 특히 젊은이들에게 추천한다.
18.
낯선 곳에 가면 사람은 누구나 취약해진다. 그 장소와의 연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곳을 잘 아는 길 안내인이 동행한다면 긴장감은 설렘과 기대로 바뀐다. 낯익은 장소를 걸을 때 사람들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미 알고 있는 곳이기에 별다른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익은 곳에 숨겨진 낯섦을 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눈을 통해 보는 순간 세상이 달리 보인다. 성경은 우리에게 낯선 세계인 동시에 낯익은 세계이다. 성경 속 여행을 떠날 때 좋은 길 안내자를 만나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이다. 박대영 목사는 그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탁월한 안내자이다. 안내자이지만 실은 영혼의 순례자이다. 그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사도행전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우리가 어떤 세계에 초대받았는지를 자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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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고도 가야만 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던 루카치의 세계, 머리 위로 총총히 빛나는 별로 인해 경이로움을 느끼던 칸트의 세계는 영원히 스러진 것인가? 도구적 이성이 심미적 이성을 압도하는 시대에 이종태가 재주술화된 세상을 들고 나온 까닭은 무엇일까? 허위단심으로 욕망의 언덕을 오르느라 깊이의 세계를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이들이 빚어내는 황량함에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장엄한 세상 앞에 설 때 우리를 확고하게 사로잡던 문제들의 장악력은 해체된다. 저자는 루이스를 길잡이로 삼고 있지만, 그를 따라 걷는 동안 수많은 동행인들이 그 경이의 여정에 합류하여 더 큰 흐름을 만들고 있다. 우리도 그 흐름의 일부가 될 수 있다.
20.
  • 녹색 순례자 - 생태목회자, 환경운동가의 35년 영적순례일지 
  • 양재성 (지은이) | 이야기books | 2023년 11월
  • 15,000원 → 13,500원 (10%할인), 마일리지 750
  • 세일즈포인트 : 86
꽤 오래 전 일이다. 교회 전화기가 울려 수화기를 들자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함양에서 목회하는 양재성인데요….” 북산 최완택 목사님이 발행하던 ‘민들레 교회’ 주보에서 간간이 마주하던 이름이 내게 실제의 인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함양제일교회 사경회를 인도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함양이라는 지명은 알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도시였다. 소박한 예배당에서 사경회를 인도하는 동안 양재성 목사에 대한 신뢰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는 교인들 앞에 설 때마다 말 한 마디를 해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예배를 집례할 때는 더욱 그랬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제된 언어를 사용했다. 교인들 또한 진실하고 따뜻했다. 상림을 함께 걸으며 들려준 목회 이야기와 ‘지리산 열린 연대’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예수 정신으로 살려는 올곧은 영혼을 만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몇 해 후 그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고 자연스럽게 청파교회로 소속을 옮겼다. 청파교회가 환경문제에 조금 앞선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 덕분이다. 그는 환경 현안이 있는 곳마다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기도회를 개최하고, 항의 집회를 기획하는 등 분주한 일정을 소화했지만 청파교회 교인들과의 사귐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가슴에 붙은 불이 다른 이들의 가슴에도 옮겨 붙듯이 그의 열정은 많은 교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환경 파괴의 현장을 찾는 이들이 늘었고, 후원자들도 늘어났다. 깊이 각성된 한 사람이 검질기게 추구하는 새로운 세상의 꿈은 다른 이들에게도 옮겨 붙게 마련이다. 리 호이나키는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오늘날 권력과 부와 상상력과 지성과 문화생활을 조직하고 독점하려는 기관들은 세 종류의 분리 혹은 고립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 그 기관들은 “사람을 그 육체와 장소와 시(詩)로부터 떼어놓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세 가지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 건강한 삶의 비결인 동시에 문명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겠다. 양재성 목사가 좋은 사례이다. 그는 아버지의 적절한 충고를 따라 농사를 배우는 것을 통해 목회자의 자세를 가다듬었다. 성육신 신앙은 관념적 신학 이론이 아니라 삶을 통해 구현되어야 마땅한 믿음을 가르친다. 고백을 삶으로 번역하는 것이 믿음이다. 몸이 함께 하지 않는 믿음은 허위의식이 되기 쉽다. 호미를 손에 쥔 채 풀을 뽑고 식물들을 북돋는 일은 일종의 기도이다. 각성된 이에게 노동은 고역이 아니라 고요한 성찰의 시간이 된다. 그는 그렇게 육체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양재성 목사는 또 자기가 선 자리가 거룩한 자리임을 잊지 않는다.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 아래서 신을 벗고 엎드렸던 것처럼 그는 부르심을 받은 자리가 성지임을 알았기에 그 장소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것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 주위에 살고 있는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지리산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종교인들과 연대한 것도 같은 동기에서 비롯된 일이다. 가재울녹색교회를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재울마을사람들이라는 주민조직을 만든 것도 장소를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양재성 목사는 시를 배달하는 우편배달부이다. 시는 ‘언어의 사원’이다. 시인은 일상에 깃든 영원의 빛을 예민하여 포착하여, 그것을 언어의 재배치를 통해 드러내는 사람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이 슬그머니 열어 보이는 세상에 주목하는 일이다. 헤르만 헤세는 “시는 시인의 호흡, 그의 아우성, 그의 꿈, 그의 미소, 그의 주먹질”이라고 말했다. 산문적 현실 속에서 바장이며 사는 동안 우리 영혼은 납작해지게 마련이다. 시인들은 그 납작해진 영혼에 숨을 불어 넣어 일어선 존재가 되게 한다. 매일 아침 그는 한편의 시가 빚어낸 자기 영혼의 풍경을 정갈한 언어로 드러내 보인다. 그가 불의와 싸우는 치열한 현장에 서 있으면서도 거칠어지지 않는 것은 시라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양재성 목사는 성공의 사다리 윗단으로 오르기 위해 자기 삶을 기획하지 않는다. 그는 길을 걷는 사람이지만 그 길은 자기가 능동적으로 선택한 길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어진 길이다. 때로는 사람이 길을 택하지만 길이 사람을 택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요 21:18)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부름 받은 자들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이후에 그의 삶이 어디를 향하게 될지는 그의 주인이신 분의 뜻에 달려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내딛는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든 영원한 중심과 잇대어져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루미는 ‘샘을 향해’라는 시를 통해 이 놀라운 신비를 노래한다. “샘을 향해 걸어라. 지구와 달이, 그들이 사랑하는 것을 맴돌 듯이 돌아라. 돌아가는 것은 무엇이든 중심(中心)에서 온다.” 느릿느릿한 말투로 사람들 속에 잠들어 있는 뜨거움을 끄집어내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단절되어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엮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그를 통해 하느님이 하시려는 일이 무엇일까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그와 순례길의 동행이 되어 기쁘다.
21.
일반 신자들이 제기할 법한 신앙적 질문들을 가려 뽑고 거기에 답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일견 평이한 듯 보이지만, 우리를 심층적 신앙의 세계로 인도한다. 전통적인 신앙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고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복음을 우리 시대의 언어로 재맥락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2.
성에 낀 창가, 흐린 불빛 아래 앉아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시를 쓰던 지바고를 생각한다. 그리고 말씀의 지층을 탐사하면서, 곱씹은 말씀 한 자 한 자를 명징한 언어로 옮기느라 골똘했을 한 사람을 생각한다. 『메시지』의 행간에는 각고의 세월 동안 그가 흘렸을 눈물과 탄식, 기쁨과 감동이 배어 있다. 그 행간까지도 읽으려 한 번역자들과 편집자들의 노고도 눈물겹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현대인을 가리켜 ‘메시지를 잃어버린 메신저’라 했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잊고 있는 본래적 삶을 되찾도록 도와줄 것이다. 성경의 세계와 깊이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을 얻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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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낀 창가, 흐린 불빛 아래 앉아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시를 쓰던 지바고를 생각한다. 그리고 말씀의 지층을 탐사하면서, 곱씹은 말씀 한 자 한 자를 명징한 언어로 옮기느라 골똘했을 한 사람을 생각한다. 『메시지』의 행간에는 각고의 세월 동안 그가 흘렸을 눈물과 탄식, 기쁨과 감동이 배어 있다. 그 행간까지도 읽으려 한 번역자들과 편집자들의 노고도 눈물겹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현대인을 가리켜 ‘메시지를 잃어버린 메신저’라 했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잊고 있는 본래적 삶을 되찾도록 도와줄 것이다. 성경의 세계와 깊이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을 얻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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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낀 창가, 흐린 불빛 아래 앉아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시를 쓰던 지바고를 생각한다. 그리고 말씀의 지층을 탐사하면서, 곱씹은 말씀 한 자 한 자를 명징한 언어로 옮기느라 골똘했을 한 사람을 생각한다. 『메시지』의 행간에는 각고의 세월 동안 그가 흘렸을 눈물과 탄식, 기쁨과 감동이 배어 있다. 그 행간까지도 읽으려 한 번역자들과 편집자들의 노고도 눈물겹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현대인을 가리켜 ‘메시지를 잃어버린 메신저’라 했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잊고 있는 본래적 삶을 되찾도록 도와줄 것이다. 성경의 세계와 깊이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을 얻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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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낀 창가, 흐린 불빛 아래 앉아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시를 쓰던 지바고를 생각한다. 그리고 말씀의 지층을 탐사하면서, 곱씹은 말씀 한 자 한 자를 명징한 언어로 옮기느라 골똘했을 한 사람을 생각한다. 『메시지』의 행간에는 각고의 세월 동안 그가 흘렸을 눈물과 탄식, 기쁨과 감동이 배어 있다. 그 행간까지도 읽으려 한 번역자들과 편집자들의 노고도 눈물겹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현대인을 가리켜 ‘메시지를 잃어버린 메신저’라 했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잊고 있는 본래적 삶을 되찾도록 도와줄 것이다. 성경의 세계와 깊이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을 얻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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