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아무나 다가설 수 없는 낯설고 화려한 세계처럼 느껴진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 본 요소라는 ‘의식주(衣食住)’의 그 ‘의’와는 동떨어진 세상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패션은 인간의 본성에서 탄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약점을 감추고 보다 강해 보이고자 하는, 살아남고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동물의 본능 말이다.
어린 프리다 칼로가 잔인한 아이들의 놀림에서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해 여윈 오른 다리 위로 양말을 여러 장 겹쳐 신었던 것처럼, 코르셋을 숨기려 품이 큰 우이필을 입으면서도 그 코르셋에 붉은 낫과 망치를 그려 넣었던 것처럼, 혼혈이라는 혼합성과 “두 사람의 프리다” 에서 비롯한 이중성을 탐하며 의식적으로 옷과 액세사리를 걸쳤던 것처럼, 짙은 일자눈썹을 그린 한편 분홍색 블러셔를 발라 열정적인 투사인 동시에 정열적인 여자이고자 했던 것처럼, 풍성한 머리를 곱게 땋기도 하지만 짧게 잘라 단호한 결의를 표했던 것처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망가진 발을 아름다운 빨간 신발로 무장했던 것처럼.
도로시의 마법 구두와 크리스찬 루부탱의 스틸레토 힐이 그랬듯, 프리다 칼로의 붉은 부츠가 그를 영원히 행복한 세상으로 데려다주는 생각을 해 본다. 빨간 부츠를 신고 떠난 그 “외출이 즐겁기를”, 비록 “다시는 돌아오지 않”더라도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피천득, <소풍>에서)할 수 있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