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갑자기 변하는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반복되던 일상이 새롭게 보이고 낯선 세계가 펼쳐지죠. 제가 그랬습니다. 어느 날, 강의 중 의사소통에서 말투나 표정, 눈빛과 제스처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93%나 된다는 이야기인 ‘메라비언의 법칙’을 설명할 때였습니다. 예전에는 가볍게 다뤘던 내용이 그날 갑자기 언어‘를’ 열심히 연구하던 저를 언어‘만’ 다루는 불완전한 연구자로 느끼게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불편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고요. 신체 각 부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처럼 의사소통도 언어, 표정, 몸짓 등 표현방식 전체를 통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제스처’, ‘보디랭귀지’와 ‘비언어’가 들어간 제목의 책들을 보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신화, 영화, 만화 등 문화콘텐츠의 캐릭터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캐릭터까지 살피게 된 이유는 몸이 표현되는 방식에 대한 자료를 모으던 중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슈퍼맨과 사이클롭스가 눈이 아니라 코에서 빔을 쏜다면?”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할 때 코가 아니라 귀가 커진다면?”
“화가 난 헐크와 튜브는 왜 빨간색이 아니라 녹색일까?”
“라푼젤이 단발머리였다면?”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가 망치와 방패를 바꾼다면?”
언어학, 보디랭귀지 및 문화콘텐츠 캐릭터까지. ‘몸’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기존 연구성과를 정리하면서 인지언어학자의 입장에서 몇 가지 규칙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중 재밌고 핵심이 되는 내용을 이 책 <바디 버스(BODY VERSE)>에 담았습니다. ‘바디 버스’라는 용어는 미래 성장동력 메타 버스(META VERSE)의 조어법을 따라 제가 만든 것입니다. ‘몸은 작은 우주’라는 소중하지만 진부한 메시지를 새롭고 재밌게 다시 보려고요.
상상은 일상적 의미들의 확장일 뿐입니다. 그리고 확장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상상이 우리의 체험을 기초로 하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생각해보면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인 인어, 눈에서 빔을 쏘는 히어로, 입에서 물이나 불을 쏘는 괴물을 생각해보면 상상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하지만 느낌은 스케치입니다. 그런 흐릿한 느낌을 구체화해야 지식과 지혜가 되어 자유롭게 갖고 놀 수 있습니다. 제가 찾은 발견이 그 놀이의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라 낯설게 느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마치 처음 가는 여행지처럼 설렘을 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2022년 봄 매지호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