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일은 세상에서 두 번째로 행복한 일이고 그보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날이 더 행복하다. 무언가를 쓰고, 다음 쓸 것들을 기다리는 그 공백기를 나는 좋아하는 편이다.
말하자면 내가 쓴 이야기는 모두 나 혼자 썼다기보다는 주변에서 듣고 보고 대화하면서 생각한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옮겨 적었을 뿐이다. (……) 밖으로는 소설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내심 무언가를 기대했던 적이 많았다. 무엇보다 소설을 이용해서 내가 더 멋져 보이고 싶은 건 아닌지, 그걸 너무 의식하고 있던 건 아닌지…… 진짜는 내가 아니고 싶어서 뭐라도 자꾸 쓰려고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나를 더 부담스럽게 만든다. (……) 한 권을 묶고 정리하는 동안 내가 쓴 소설들이 너무 못나 보인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었다. 나는 종종 어떤 일에 오기를 부리거나, 내가 틀리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하는데 지금도 그때와 거의 비슷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