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변하는 방식으로 삶을 버텨 내기란 얼마나 버거운가. 그것은 끝없는 회의와 불신의 낭떠러지 속으로 마침내 자신을 밀어 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밖에는 살 도리가 없다. 때때로 운명에 기대어 한세상 편하게 모든 걸 수긍하고 산이나 강가에 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물론 언젠가는 꼭 그렇게 할 것이다. 배를 한 척 사고 해안을 타고 돌며 뭍에다 발을 대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 담긴 것은 과거와 현재의 신산한 풍경일 것이나 이것을 꺼내 든 내 표정은 부끄러움과 노여움으로 잔뜩 기죽어 있을 것이다. 내 스스로를 인간 혐오자로 규정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던가. 그러나 결국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비극의 최종 결론은 마침내 내가 나 스스로를 혐오하는 것에 이르게 될 것이란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선험으로의 귀환, 판단중지, 괄호 치기, 정반의 대립……. 글쓰기는 한 개인의 존재 방식이며 실존인 까닭에 나 또한 이를 피하지 못했다. 희망과 꿈과 용기 대신 절망과 불신과 좌절을 얻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얻은 이 지독한 질병과 증상들을 나는 아끼고 사랑한다. 어쩔 것인가. 나는 너무 먼 길을 걸어왔고 내 손에 든 이정표는 이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 해체가 아니라 창조를 바랐으나, 못난 수탉처럼 다 헤집어 놓고 다 파헤쳐 놓았다. 그 처참한 증거가 이 한 권의 산문집에 다소간 담겨 있으니, 부디 독자 여러분들의 넉넉한 동정심과 애정을 구할 뿐이다. 아주 먼 길을 걸어와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퀭한 시선에 부디 쓴웃음 짓지 않으시길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