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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종교/역학

이름:이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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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청교도주의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

이성호

미국 칼빈신학교(Ph.D.)에서 All Subjects of the Kingdom of God: John Owen’s Conceptions of Christian Unity and Schism의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비록에서 아멘까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그 책의 사람들, 2022),『성찬: 배부름과 기쁨의 식사』(좋은씨앗, 2023).『직분을 알면 교회가 보인다』(좋은씨앗, 2018)이 있다. 현재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 교수로 봉직하며,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과 삶을 한국 교회에 소개하며, 개척 교회를 설립하여 17세기 정통주의가 예배, 직분, 설교에 어떤 식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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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비록에서 아멘까지> - 2022년 12월  더보기

[글을 열며]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큰 빚을 갚았다는 느낌이 든다. 어려서부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교리문답을 우리의 신조로 한다”는 학생신앙운동(SFC)의 강령을 중고등부 모임 때마다 수없이 제창했다. 그 당시에는 신앙고백서의 내용에 대해서 전혀 몰랐지만, 제창 그 자체가 상당히 멋있어 보였다. 신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전도사로 사역하는 동안 주일 학교 교사들에게 소교리문답을 가르쳤다. 그 당시에는 교재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교재를 만들어 사용해야만 했다. 유학하는 동안 고백서를 부분적으로 공부할 기회는 있었지만 신앙고백서만 제대로 깊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유학을 마치고 하나님의 섭리로 두세 가정과 교회(광교장로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무엇을 가르칠까 고민하다가 오전 예배 후에 「신앙고백서」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로버트 쇼가 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이라는 좋은 교재도 있었다. 신학교에서도 신앙고백서와 관련된 과목을 개설하기도 했다. 고백서를 실제로 가르치면서 해설서를 직접 써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집필에 집중할 기회가 없었다. 감사하게도 2022년이 시작되면서 기회가 주어졌다. 장로교 목사라면 「신앙고백서」에 대한 부담감을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신앙고백서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 목사는 진정한 장로교 목사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앙고백서」야말로 장로교회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장로교회가 한국 교회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고백서에 관한 관심이 없는 것은 통탄스러운 일이다. 현실에서 한국 장로교회는 무늬만 장로교회라고 할 수 있다. 슬프게도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 이렇게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고백서를 가르치지 않고도 잘 성장했는데 굳이 고백서를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 그냥 성경을 잘 가르치면 되지 않는가?”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지금까지 잘 지내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교회 부흥의 시대에는 목회를 대충 해도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교회 쇠퇴의 시대에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튼튼한 교회만 생존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제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크기가 아니라 정체성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장로교회의 경우 그 정체성은 「신앙고백서」이다. 물론 신앙고백서를 가르친다고 해서 정체성이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고 해도 가르치는 방법이 부실하면 차라리 가르치지 않는 것이 낫다. 이것은 특별히 신앙고백서에 적용될 수 있다. 신앙고백서는 법조문과 같은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이것을 지루하게 가르칠 수도 있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도 있다. 나는 신앙고백서를 가르칠 때 정확하게 가르치는 것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재미있게 가르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많은 경험을 통해 가르치는 기술이 이전에 비해서 많이 늘었다. 교회를 개척한 후 ‘교리반’이라고 불리는 신앙고백서 반을 운영했다. 아마도 주님 오실 때까지 운영될 것이다. 새가족이 오면 반드시 이곳을 거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교리반과 새가족반은 같은 반이다. 이와 같은 운영방식은 큰 장점이 있다. 특히 100명 이하의 작은 교회에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작은 교회는 새가족반을 별도로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새가족이 잘 오지도 않지만, 오더라도 한두 명으로 반을 운영해야 하는데 반 분위기가 서먹서먹할 뿐 아니라 작은 교회에는 별도의 반을 운영할 여력이 거의 없다. 교리반은 교회 안의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교리반은 다수의 신입 ‘기존 가족’과 소수의 새가족으로 구성된다. 교리반의 목적은 적당한 시간 안에 ‘기존 가족’을 졸업시켜서 다른 반으로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배우고 싶은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재수를 선택하기도 한다. 2~3년 있다가 복학하기도 한다. 「신앙고백서」는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굳이 처음부터 차례대로 배울 필요가 없다. 또한 모든 내용을 다 배울 필요도 없다. 언제든지 참여해도 새가족은 해당 주제를 ‘기존 가족’과 같이 배울 수 있다. 나는 이것이 교리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새가족이나 기존 가족이나 고백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고백서를 완전히 소화하지 않은 이상 교리적인 질문을 했을 때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성도는 그렇게 많지 않다. 신앙고백서를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개념 파악과 핵심 정리가 기본이다. 이를 위해서 우선 신앙고백서를 성경처럼 평소에 많이 읽어야 한다. 소리를 내어서 읽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면 고백서의 내용이 조금씩 익숙해진다. 그다음에 중요한 단어나 표현에 집중하면서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한다. 고백서는 아주 정교하게 작성돼서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가르칠 때는 그 모든 것을 다 가르칠 필요가 없다. 주의해야 할 것은 교리 논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교리 교육의 목적은 신앙의 성숙이지 논쟁이 아니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1 이를 위해서 그날 가르쳐야 할 핵심 주제를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고백서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를 마친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고민’이다. 본인이 잘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잘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고백서를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대상에 따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무조건 고민을 많이 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고민의 방향은 잘 정해져 있어야 한다. 첫 번째로 해야 할 고민은 “이 교리가 정말 필요한가?”이다. “공의회”(31장)를 예로 들어 보자. 대부분의 성도는 수십 년 동안 노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 성도들에게 공의회의 유익성을 가르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해당 내용을 가르치기 전에 그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이다. 참고로 제1장 1항은 성경이 왜 필요한지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로 해야 할 고민은 “이 교리가 현실성이 있는가?”이다. 오늘날 교회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믿는 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리 공부를 통해서 노회나 총회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개체 교회에서 실제로 중요성을 경험하지 못한다면(예를 들어 노회나 총회의 중요한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알리지 않는다면) 그 공부는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 가르칠 때 적어도 “우리 교회는 이런 부분이 아직 약하지만 앞으로 이 고백서에 따라서 이러저러하게 교회를 세워갈 것입니다”라는 정도의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성경과 대화하는 것이다. 고백서의 권위를 잘 인정하지 않는 성도들은 끊임없이 고백서와 성경을 비교할 것이다. 그들은 “그런 것이 성경에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다행히 고백서는 아주 유익한 수많은 근거 구절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쉽게 수긍하지 않는 신자들을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고백서는 항상 성경과 함께 공부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로 해야 할 일을 좋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좋은 스승은 잘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좋은 질문을 제기하는 자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질문도 의미 있는 질문으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아주 평범한 질문이지만 이 질문을 “고백서에 따르면 죽음이란 무엇인가?”라고 바꾸면 흥미로운 질문이 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고백서가 가르치는 죽음을 비교하는 것은 좋은 교육 방법이다. 고백서가 가르치는 죽음과 성경이 가르치는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신할 때 신자들의 삶의 태도가 바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백서는 역사적 문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신앙고백서를 읽으면 흥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냥 다 성경에 나와 있는 좋은 교훈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신앙고백서는 그 당시 수많은 논쟁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정리된 문서다. 고백서 자체를 통해서는 그런 수많은 논쟁이나 역사적 상황을 읽어낼 수 없다. 따라서 가르치는 자는 평소에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별도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 본 해설서는 목적에 충실하기 위하여 역사적 상황은 최소한으로 다루었다. 『“비록”에서 “아멘”까지』는 이와 같은 경험과 고민에서 나온 신앙고백서 해설이다. 해설서를 쓰면서 나는 최대한 본문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독자들이 각 장의 중심 메시지를 잘 이해하도록 애썼다. 너무 많은 내용은 오히려 중심 내용을 이해하는 데 방해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이나 논쟁이 되는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각 장의 내용을 제대로 다루려면 장마다 한 권의 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 책을 기초로 해서 다른 책들을 참고함으로 고백서에 대한 이해를 더 높이기를 바란다. 교회를 개척한 지 10년째 되는 해 나는 교회를 내 제자에게 이양했다. 이제 성도 수도 150명이 넘는다. 고백서를 열심히 가르친다고 해서 무조건 교회가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고백서가 광교장로교회가 성장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강단에서 성경적 설교가 선포되고, 매주 성찬을 통해서 풍성한 예배가 시행되고, 예배를 섬기는 신실한 직분자가 세워지고,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기 위해서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이 부지런히 가르쳐졌다. 그 결과 오늘날 작지만 귀한 성장의 열매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쇠퇴의 시대에 개혁교회를 세우기를 열망하는 모든 이들도 동일한 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천안삼거리 공원을 바라보며 2022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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