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3년으로 60세를 맞이했다. 옛날식으로 치자면 환갑(環甲)이다. 요즘이야 아무도 뜻 깊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20여 년 전 만해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숫자였다.
60년이 됐으니 태어난 해는 자연히 1953년이다. 6·25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시점이었다. 내가 태어난 달에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그 당시 한국 국민의 1인당 국민소득은 대략 60달러 대였다. 그로부터 60년간 한국 경제는 참으로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국제사회에서는 그동안 한국의 발전 과정을 ‘한강의 기적’으로 불러왔다.
굳이 사람의 삶의 수준과 행복도를 화폐로 표시한다는 게 어폐가 있는 일이지만 어쨌든 2013년 기준으로 치면 우리네의 국민소득은 2만3000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구매력 평가로만 치자면 이미 3만 달러 선이라는 게 경제학자들의 분석이다. 지난 일본 특파원 경험에 비춰 봐도 한국인의 먹고사는 수준은 지금의 일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나 개인으로 치자면, 아니 우리 국민 중 전후세대로만 치자면 우리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궁핍한 사회에서 태어나 정확히 60년 만에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해 있는 셈이다.
이쯤해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요즘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0세 전후다. 이를 기준으로 추산하자면 내 수명도 약 20년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20년간 한국의 경제는 어느 수준에까지 도달할 것인가. 만일 3만5000~4만 달러 수준에 이른다면 한국은 완벽하게 선진국에 들어선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내가 선진국 국민이 된다고 해서 노년 생활 자체가 지금보다 더 달라질 것은 없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다. 다시 말해 20년 안에 명실 공히 선진국에 진입한다면 나는 1953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시민으로 태어나 남은 일생 동안에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의 한복판까지를 몽땅 경험하는 인류문명에서 참으로 희귀한 존재가 된다.
생각해보라. 우리 인류 가운데 이런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대한민국의 ‘압축 성장’이라는 기적이 없었다면 결코 누릴 수 없는 경험인 것이다. 그야말로 강냉이 죽 그릇을 들고 줄을 서던 시절에서 시작해 세계 최고 수준의 국산 스마트 폰을 손에 든 채 출퇴근하는 진기한 파노라마가 한 사람의 인생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개체(個體)발전은 계통(系統)발전을 반복한다’는 생물학적 공리가 우리 세대를 통해 실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무대 한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감동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공기 속에서 살다보니 공기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한국을 제외한 바깥세상에서 보자면 이는 인류사의 보기 드문 기적이다. 내가 이 책에서 돌아보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물론 이 책의 내용 자체는 학문적 수준의 것이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직업상 쌓아온 지적(知的) 탐색 경로를 큰 힘 들이지 않고 그대로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자 생활의 대부분을 국제경제 담당으로 지내왔다. 문화일보 논설위원실로 발령 받고서는 갑자기 경제 담당 논설위원으로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벼락치기로 전후(戰後) 한국경제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였다.
그 후로 내 책상 위에는 늘 한국경제에 관한 신문, 잡지나 관련 책들이 쌓여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글을 쓰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단순히 자기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서 접한 것들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훑어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특별히 새로운 시각이나 독특한 주제는 담겨져 있지 않다.
단지 전쟁의 와중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일생 동안 한국 경제는 어떻게 용틀임할 수 있었고, 어떻게 남과 다르게 발전할 수 있었는가의 ‘배경’을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한국인의 피나는 노력과 이 같은 발전 과정을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나만의 사고 과정을 담아 보았다. 거기에는 물론 앞으로 남은 20년(?) 사이에 이뤄질 국가적 성공에 대한 바람이나 기원(祈願)도 함께 담겨 있다.
다른 현대 한국사 및 전후경제사 책들로부터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통사(通史)가 아니라 주제별로 나눠 그 전후 과정을 한꺼번에 둘러보도록 구성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노동운동을 각 시대별로 나눠서 서술하지 않고 한데 모아 처음부터 끝까지 통찰하는 식이다.
또 하나, 집필 과정에서 역점을 둔 것은 한국경제 60년의 빛나는 역사 만들기에서 대중과 엘리트의 관계를 재조명해보고자 한 점이다. 이는 대한민국을 떠나 어느 시대, 어느 나라건 간에 국가 만들기 아니면 역사 만들기에서 또 하나의 핵심 주제일 수밖에 없다. 단지 이 주제를 이 책에서 다시 한 번 더 다뤄본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