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 삼례에서 태어났다. 전주 신동아학원, 익산 남성학원 등에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시집으로 『빈들』 『덩어리 웃음』 『비상』, 산문집으로 『저 아침의 소리는』 『풍탁소리 들으러 왔다가』, 편저로 『통천김씨가족사(通川金氏家族史)』 『통천김씨천년사(通川金氏千年史)』 부도(婦道)를 잇는 가문(家門)의 여인들』 등이 있다. 현재 통천김씨종친회장으로 종회 일을 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새순은 언제나 새롭다. 새싹은 이음의 질서요 희망이다, 아래로만 흐르는 물의 본새처럼.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 어떻게 대처하며 사는 게 옳은 일인가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동안 발표한 작품집에서 추리고 최근에 쓴 것을 모아 한 눈으로 일별할 수 있도록 엮었다. 엮고 보니 눈을 밝혀 표현하려 했던 삶의 질곡, 씨족의 내력, 지역사, 자연의 풍광 등을 응축하여 승화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다락논을 갈다가 소를 몰고 가는 농부의 워낭 소리를 듣는다. 먹이를 삼키지 못하고 먼 창공을 날아와 토악질을 하는 어미새의 본질을 생각한다. 상여(喪輿)가 지나는 길에 펄럭이던 만장(輓章)의 훈기를 그린다.
일제강점기에 시골 선비의 아내로 일곱이나 되는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눈까지 멀었던 우리 할매, 이 자식 저 자식 등에 업혀 요강 단지를 들고 끌려다니면서도 끄먹끄먹 인자함을 잃지 않으셨던 할머니, 그리고 7형제 장남으로 어린 동생들을 위해 피를 말렸던 아버지의 얼룩진 삶, 만장이 지나간 자리에서 유품(遺品) 태웠던 아픔을 잊어본 일이 없다.
명절날 아들 딸 가족들이 거실에서 함께 뒤엉켜 잠이 든 양을 보고 싹수 있게 자리 잡는 손주들의 치다꺼리로 애를 태웠을 혈족의 일념을 생각한다. 씨족의 유적 복원과 씨족사 정리에 힘을 모아주신 일가분들,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 그리고 함께 어울려 살았던 이웃분들에게 감사한다.
역사적 시련으로 오늘날 소족으로 남은 현실에서 일념으로 복원한 유지(遺址) 관리와 씨족사 정리에 후손들이 합심하기를 기대한다. 엄벙덤벙 먼 길을 돌아온 오늘, 뒤돌아보지 않고 편안히 청명동 선산에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간 간간이 써놓은 것을 옹알이의 습성처럼 되뇌어본다. 생활의 하수와 치사한 인정을 가린 운해(雲海)가 한결 아름답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