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베를린의 고등음악학교와 대학에서 공부는데, 학위 논문은 {모차르트 초기 오페라에 있어서의 악기 용법에의 이탈리아의 영향}이라는 제목이었다. 졸업 후에는 부퍼탈, 로스 토크, 다름슈타트 등의 극장에서 근무했으며, 1935년에 함부르크 국립 오페라 극장의 악장으로 취임했다.
이 지위는 1942년까지 계속되었고,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의 오페라 감독을 거쳐 1944년에는 총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1945년에는 함부르크에 새로 생긴 북독일방송교향악단의 수석 상임 지휘자로 1971년까지 재임했고, 1972년 이후에는 명예 지휘자로서 이 악단과 인연을 맺고 있다.
슈미트 이셰르슈테트는 북독일방송교향악단의 연주 수준을 세계적으로 높이는데 기여했으며, 오케스트라 트레이너로서는 다른 사람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수완을 보였다. 그는 북독일방송교향악단과 함께 파리를 비롯한 에든버러, 미국 등지로 연주 여행을 다니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도 1955년부터 1964년까지 스톡홀름 필하모니의 수석 상임 지휘자를 겸하기도 했다. 물론 그 밖의 다른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도 많이 했는데, 120개 이상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슈미트는 특히 북부 독일에 많은 팬이 있었으며, 그의 이름이 레코드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베를린 시절인데, 그 무렵에는 주로 파퓰러 뮤직의 소품을 많이 녹음했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이 슈미트의 본질은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 후의 함부르크 시절에는 독일에서 비교적 냉대를 받았던 바르토크, 스트라빈스키, 힌데미트 등의 음악 보급에 주력했다. 슈마트가 제일 사랑한 것은 모차르트의 오페라였으며, 모차르트의 관현악곡, 베토벤과 브람스의 교향곡을 자주 연주했다.
슈미트의 음악은 격렬한 열기를 내세운다기보다는 정리, 정돈된 것으로서, 언제나 온화한 격조를 지니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그의 착실하면서도 무겁고 두터운 울림은 참으로 독일 감성이 주류를 이루는 지휘자란 느낌을 준다. 녹음은 196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두드러지게 의욕적인 활동을 보였는데, 표현에도 적극성을 보인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레코드는 빈 필하모니를 지휘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8번], 북독일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 등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