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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지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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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진리의 발견 (무선)>

지여울

한양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를 졸업하고 토목 설계 회사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출판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탐정이 된 과학자들》, 《넷플릭스처럼 쓴다》, 《내일 살해당할 것처럼 써라》, 《자살에 대한 오해와 편견》,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을 향한 탐험》, 《열다섯이 묻고 여든이 답하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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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디 아더 유> - 2023년 4월  더보기

*아주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플갱어라는 말을 처음 접했던 것은 어린 시절 어느 책에서인가 읽었던 괴테의 일화에서였다. 그때는 괴테가 누구인지도 잘 몰랐지만 도플갱어라는 말은 이국적인 어감과 책에 나온 중세 분위기의 음산한 삽화와 함께 어린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아 있었다. 나와 겉모습이 똑같이 생긴 사람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 사람과 얼굴을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린 시절에는 마냥 즐거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그 친구는 무슨 일에서든 나와 마음이 맞을 것 같았고, 어떤 상황에서든 내 편이 되어 줄 것 같았고 우리는 사이좋은 한 팀이 되어 이 세상의 악을 모조리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순진한 어린 아이가 아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나와 생김새가 똑같은 그 도플갱어는 성격이나 취향까지도 나와 똑같을 것인가? 아니면 겉모습만 똑같을 뿐 나를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나와는 전혀 다를 것인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내 주위의 사람들은 그와 나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겉껍질에 불과한 외모와 행동거지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전혀 다른 정신과 마음을 어떻게 반영하고 보여주게 될 것인가? 그리고 나는, 나와 닮았지만 전혀 같지 않은 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상대하게 될 것인가? 나는 나와 완전히 똑같은 그 앞에서 내가 나라는 진실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나와 똑같이 생긴 존재, 독일어로 ‘이중으로 걷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 도플갱어가 우리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당위성과 가치를 훼손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나일 수밖에 없는 이유, 즉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과 예술의 모든 역사에서 자신의 도플갱어를 주제로 삼은 작품들이 많은 것도, 도플갱어와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의 비극적인 일화들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도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 놀랍지 않다. 다들 이 신비롭고 오싹한 현상을 마주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에 대해 열심히 고민한 끝에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린 것이 틀림없다. 작품 속에서 언급되며 작품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여겨지는 제임스 호그의 《사면된 죄인의 사적 일기와 고백》은 실로 이야기의 복선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작품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는 현재 번역본이 나와 있지 않다.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소설의 주인공인 로버트 콜원은 17세기 스코틀랜드, 경건하고 종교에 심취한 어머니 밑에서 칼뱅파의 목사 링엄 목사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이야기 안에서 로버트는 어머니가 링엄 목사와의 불륜을 통해 낳은 혼외 자식일 가능성이 암시된다. 반면 로버트의 형인 조지는 세속적이고 활달한 아버지 밑에서 스포츠에 능하고 사교적인 젊은이로 자라난다. 서로 따로 자라나 모든 면에서 서로 상반되는 두 형제는 훗날 에든버러에서 만나게 되고 사사건건 부딪치며 충돌을 일으킨다. 결국 조지는 어떤 결투 끝에 살해당하는데, 그 현장에 있던 사람은 그 자리에 로버트가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 사건 이후로 로버트는 모습을 감추고 훗날 그의 무덤에서 그가 쓴 자백서가 발견된다. 자백서에 따르면 로버트는 길 마틴이라는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사악한 인물의 영향을 받아 악의 길로 빠져든다. 결국 로버트는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말지만 길 마틴이라는 인물이 로버트의 또 다른 자아였는지, 혹은 현신한 악마였는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책을 다 읽은 독자라면 알아차렸겠지만 《디 아더 유》에서 내내 롭이라는 애칭으로만 등장하다 마지막 결정적인 장면에서야 본명이 등장하는 로버트는 《사면된 죄인의 사적 일기와 고백》의 주인공과 이름이 똑같다. 그의 ‘도플갱어’ 또한 길 마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길모어 마틴이 롭의 또 다른 자아인지, 실제의 도플갱어인지, 혹은 악마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밝혀지지 않은 채 모호하게 남아 있다. 혹시라도 이미 《사면된 죄인의 사적 일기와 고백》을 알고 있던 독자는 롭의 본명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이 책과의 유사성을 깨닫고 고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로버트의 도플갱어 이름이 길 마틴인 것은 《사면된 죄인의 사적 일기와 고백》을 읽은 것이 분명한 롭이 그렇게 이름을 붙였기 때문일까? 혹은 마지막 반전에서처럼 길 마틴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라면 롭은 태국에서 자신과 얼굴이 똑같으면서 이름도 하필이면 길 마틴이라는 인물을 마주한 결과 도플갱어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품게 된 것일까? 어느 쪽이든 간에, 도플갱어의 존재가 롭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롭이 도플갱어의 존재에 집착하게 된 것은 그가 젊은 시절 도플갱어와 만나게 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도플갱어가 현실 속의 인물이든, 상상 속의 허구의 인물이든 말이다. 이미 롭의 내면 안에는 도플갱어와 만나게 되는 순간, 즉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하는 순간 파멸로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던 것이 틀림없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에게는 모두 결점 혹은 약점이 존재한다. 케이트는 초인적인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감정과 충동에 휩쓸리기 쉽고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벡스는 독립적이고 씩씩하지만 신랄하고 그 혀가 맵다. 제이크는 따스한 마음씨에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생활 능력이 없고 야무지지 못하다. 작가의 전작에도 등장하는, 가장 번역하기 즐거웠던 사일러스 형사와 스트로버 형사의 만담 콤비 역시 나름의 약점이 있다. 그리고 롭은…. <그들은 어떻게 자기 자신과 만났는가>.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과 만났는가. 결국 자기 자신과 만난다는 것은, 도플갱어에 맞서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고 자신의 가치를 규정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어둠과 약함, 악함을 어떻게 인정하고 껴안는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케이트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던 능력에 배신을 당하고 벡스는 그 신랄한 태도 때문에 여전히 혼자일 것이며 제이크는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게으름과 무위에 발목이 잡힐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 안의 약점, 어둠, 수치스러움에 먹혀버리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계속해서 살아나갈 수가 있다. 하지만 겉보기에 완벽하고 결점과 약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롭만은 계속 살아갈 수가 없었다. 영혼을 도플갱어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괴테는 젊은 시절 도플갱어와 마주한 후로도 83세까지 장수하며 《파우스트》 같은 걸작을 남겼다. 그렇다면 가상의 도플갱어와 한번 마주해보는 것도,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일인 듯싶다. 그게 괴테였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면야, 어떻게 뭐라고 반박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모두들, 자신의 도플갱어와 마주하는 일에 부디 행운을 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안에 등장하는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그들은 어떻게 자기 자신과 만났는가>는 인터넷으로 이미지만 찾아보았을 뿐이지만 정말로 아름다운 작품이다. 조사해 본 바로는 그 중 한 작품이 케임브리지의 피츠윌리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보기 위해서라도 여행을 떠나 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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