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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계용묵 (하태용)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04년, 평안북도 선천

사망:1961년

최근작
2024년 2월 <계용묵 단편문학>

계용묵(하태용)

1904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다. 유년시절에 할아버지인 계창전 밑에서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대학≫, ≪논어≫, ≪맹자≫ 등의 한학을 배운다. 1914년 삼봉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뒤 1919년 졸업한 후 서당에서 공부를 지속한다. 1918년에는 안정옥과 결혼한다. 1921년 조부 몰래 상경해 중동학교에 입학한다. 이때 만난 김억을 통해 염상섭, 남궁벽, 김동인 등과 교유하며 문학에 뜻을 두게 된다. 하지만 조부가 신학문을 반대해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낙향하게 된다. 1922년 4월 다시 조부 몰래 상경해서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6월에 강제로 낙향하게 된다.

17∼18세에 이미 ≪조선일보≫에 논문, 감상문, 시 등을 발표하면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해, 선배들을 누르고 올라서겠다는 욕심에 5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문학 공부를 하게 된다. 이때 이광수가 주재한 ≪조선문단≫으로 ‘최서해, 한설야, 채만식, 임영채, 박화성’ 등이 당선되어 문단에서 대우를 받은 것에 고무된다. 그리하여 1925년 ≪조선문단≫ 제8호에 ‘자아청년(自我靑年)’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상환>을 발표하며 등단한다. 하지만 작품 평이 마음에 들지 않아, 1927년 <최 서방>을 통해 ≪조선문단≫에 재당선된다. 하지만 최서해에 의해 원고가 당선된 것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1928년 3월 일본 도쿄로 건너가 동양대학 동양학과에서 공부하고 야간에는 정칙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 1929년에는 장녀 정원이 출생한다. 1931년 집안이 파산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다. 1932년 차녀 도원이 출생한다. 1935년에는 정비석, 석인해, 전몽수, 김우철, 장기제, 장환, 채정근, 허윤석 등과 함께 동인지 ≪해조(海潮)≫의 발간을 협의했으나 무산되었다. 1938년 5월 조선일보 출판부에 입사했고, ≪매일신문≫에 친일 수필인 <일장기의 당당한 위풍>(1942)을 발표한다. 1943년 8월 일본 천황 불경죄로 구속되었다가 10월에 석방된다. 12월에 방송국에 다시 취직했지만, 일인과의 차별 대우로 사흘 만에 퇴직한다. 징용을 피해 출판 업무를 보다가 ≪조선 전설집≫을 편집해 수만 부를 판매한다.

시골로 낙향했다 해방 이후 상경해서, 1945년 정비석과 함께 종합지 ≪대조(大潮)≫를 창간한다. 1948년 4월에는 김억과 함께 ‘수선사(首善社)’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세운다. 또한 1951년 1·4 후퇴 당시 피난을 갔던 제주도에서 월간 ≪신문화≫를 창간해 3호까지 출간한다. 1954년 서울로 환도하고,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장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1986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받는다.

<최 서방>(1927), <인두지주>(1928), <백치 아다다>(1935), <별을 헨다>(1949) 등 40여 편에 이르는 과작의 소설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적 관점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등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연민이 드러난다. 대표작인 <백치 아다다>(1935)는 벙어리 여성 ‘아다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물욕에 물든 사회의 불합리를 지적하면서, 불구적 조건과 물질적 탐욕으로 인해 비극적 인생을 마감해야 했던 수난당하는 여성상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통해 삶의 비애와 질곡을 담담하게 포착하면서, 물욕에 젖은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대한 회의와 질문을 던진 휴머니스트로 평가된다.

첫 창작집 ≪병풍에 그린 닭이≫(1943)를 일제 말기에 출간하면서 창작에 대한 욕심과 겸손을 강조하며 부끄러움과 반가움을 토로한다. 해방 후 출간하는 두 번째 단편집 ≪백치 아다다≫(1946)에서는 검열의 탄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임과 동시에 38선 이북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한다. 세 번째 창작집 ≪별을 헨다≫(1949)에서는 해방 이후 창작된 작품들만을 모아 묶어 내면서 작품 창작의 배경을 토로한다. 수필집으로 ≪상아탑≫(1955)이 있으며, 세계 명작 소개집인 ≪여자의 생태≫(1958)를 출간한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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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큰글자책] 백치 아다다 / 별을 헨다> - 2015년 6월  더보기

『백치 아다다』 서(序) 두 번째 내는 단편집이라고는 해도 처음 것 『병풍에 그린 닭이』에 넣은 것 이후에 된 것들만은 아니다. 십여 년을 앞서 된 것도 여기에 몇 편 들었다. 과거 검열의 탄압이 이렇게 뒤죽박죽을 만들어 놓게 한 것이다. 반드시 연대순으로 작품을 모아야 되랄 법은 없겠지만 경향이 비슷한 것들로만은 따로따로 골라 모아 놓고 싶은 생각이 알뜰하다. 그러나 과도기에 처한 금일, 또한 모든 사정이 그렇게도 허치 않는다. 더욱이 삭제되었던 부분의 원고를 지금 찾을 길이 없어, 그것을 얻어 채워야 할 것이 큰일인 것이다. 이 삭제의 부분이 후일 얻어지는 대로 나는 이 두 개 단편집을 전부 뜯어 남겨둔 원고를 다 집어넣고 세 개의 단편집을 만드는 것으로 지난날의 기념을 삼고, 앞으로는 이제부터 써지는 것만으로 새로이 엮어 나갈 작정이다. 다른 원고의 삭제된 부분은 38 이북에 보관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기억에도 남아 있어, 그 어떤 시기와 시간의 여유만 있어지는 날이면 처음 썼던 그대로는 그리 틀림없이 될 것 같으나, 다만 「신기루」 한 편만은 삭제된 부분의 원고도 잃고, 3절에서부터 간간이 깎여낸 것이 이십여 매나 되는 적지 않은 매수(枚數)이여서 도저히 기억을 살리어 더듬어 짜낼 수가 없을 것 같으니, 이것만은 아주 희망 없는 병신이 되고 말 것임이 작자로선 여간 마음에 걸리지 않는다. 4절에 이르러선 거의 전부가 깎이다시피 되어서 정이 떨려 다시 거들떠보기도 싫다. 말의 연락상 너무도 흉측한 곳이 있어 어색이나 좀 피할까 하여 4절 속에 절을 하나 더 두어 전 5절이란 것을 6절로 만들어 놓았다. 이제, 이 단편집 상재에 있어, 원고를 올려 보면 이후 4, 5삭 동안을 통 연락이 끊긴 38 이북의 집 생각이 더한층 간절하여진다. 어떻게 이 책이 단 한 권이라도 숨어서 38선을 타고 넘어 내 집에 들어감으로 안부나 전하여지는 요행이 있어진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일는지 모르겠다. 1946년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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