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왜 씌어졌을까?
이 책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다른 방법에 대한 작은 탐색이다. 이를테면, 사랑에 관한 1인칭의 고백과 2인칭의 대화와 3인칭의 묘사가 공존할 수 있을까, 시적인 이미지와 간명한 서사와 에세이적인 사유는 어떻게 교차할 수 있을까,와 같은 헛된 시도 말이다. 시적인 것과 소설적인 것과 에세이적인 것이 뒤섞인 글쓰기를 향한 무모한 동경은 오래되었다.
이것은 또한 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사소란 사유의 궤적이다. 여기, 사랑을 둘러싼 문장들은 사랑의 매혹이 아니라 무기력감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 진부하고 상투적인 ‘사랑’에 대해 아직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게는 중요하다. 어쩌면 여기에서 사랑을 둘러싼 40편의 공허와 1편의 기이한 위로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를 흔들었던 날카로운 가시 같은 문장들을 빌미로 이 이상한 글쓰기는 시작된다. 이 글을 ‘허구적인 에세이’ 혹은 ‘픽션 에세이’라고 불러도 되겠지만, 이야기의 주인공과 글쓰기 주체의 얼굴과 이름이 지워진다는 의미에서 ‘익명의 에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와 ‘그녀’는 복수의 ‘그들’이거나 혹은 ‘당신들’이거나 ‘내’ 안의 사람들이다.
‘사랑의 미래’는 사랑의 설레는 혹은 불안한 앞날을 마라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랑이 아직 오지 않았음을, 혹은 사랑이란 아직 오지 않은 어떤 것, 영원히 오지 않을 어떤 것에 대한 이상한 갈망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여기 사랑의 언어는 갈망의 언어라기보다는갈망에 대한 갈망의 언어이다.
이 책의 1부는 ‘그’의 시간 속에 있고 2부는 ‘그녀’의 시간 속에 있다. 이 두 가지 층위의 시간은 서로 엇갈리거나 마주 보거나 교차한다. 그 시간 속에 얼룩처럼 뿌려진 이미지들은 모두 각각 최초의 장면이면서 최후의 장면이다. 사랑이란 그 선후를 알아낼 수 없는 이미지들의 사건이다. 사랑의 마지막 순간, 그 모든 장면의 순서에 대해 입을 다물게 된다.
극단의 공허는 최선의 위로만큼 표현되기 어렵다.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사랑이 하나의 관념으로 요약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래도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 일은 피할 수 없다고 말하기 위해, 이토록 어눌한 언어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부끄럽다.
이 글들은 지난해 씌어졌다. 그 여름에서 가을 사이, 방어할 길이 없는 적막한 시간을 마주했고, 더 가난한 시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어리석게도……
연재 때 따뜻한 관심을 보여준 익명의 독자들과 앞으로 이 책을 읽게 될 미지의 독자들에게 감사한다. 이 책이 어떤 느낌을 공유한 이름 없는 공동체의 계기가 된다면 글 쓰는 자의 더할 나위 없는 영예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늦게 온 예감처럼 만날 수 있다면, 이 허술한 글쓰기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2011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