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웰링톤에서 태어나 4살 때 호주 시드니로 이주하여 성장했다. 러셀 크로우는 촬영장에 음식을 배달하던 부모 덕분에 일찍 연기를 시작하여 호주 지방 TV에서 아역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는 뉴질랜드에서 다녔고, 친구들과 록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하기도 했다. 졸업 후, 연극 배우로 활동하여 영화 배우로의 진출을 모색했다.
그는 25세가 되어서야 영화에 데뷔했다. 90년 전쟁 드라마 <암본의 심판>으로 영화 데뷔, 91년 휴고 위빙과 공연한 <위험한 선택(Proof)>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작품은 난폭한 스킨헤드족으로 출연한 <이유없는 반항(Romper Stomper)>이었다. 이 영화는 영화 배우로서의 러셀 크로우를 오스트레일리아 뿐만 아니라 사방에 알리는 계기가 된 성공작이었다.
1994년작인 <섬 오브 어스>는 그가 헐리우드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배우임을 증명한 영화였다. 1년 뒤인 1995년, 당시 <퀵 앤 데드>의 제작을 맡았던 샤론 스톤은 <이유없는 반항>에 출연한 러셀 크로를 주목하여 그의 캐스팅을 추진했고, 러셀 크로는 <퀵 앤 데드>를 통하여 헐리우드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그렇게 성공하지 못한 탓에 러셀 크로우의 연기도 크게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덴젤 워싱턴과 함께 출연한 두 번째 헐리우드 영화 <가상현실>은 그의 성공 가능성을 한층 높여 주었다. 그러나 헐리우드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던 반항적인 러셀 크로우는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으면서도 주로 호주에 머무르고 있었다.
세 번째 출연한 커티스 핸슨 감독의 누아르 영화 을 통해 그는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곧이어 마이클 만 감독의 <인사이더>에 출연하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인사이더>에서 그가 연기한 제프리 와이갠드 박사는 자신의 절박함과 비극성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고민하는 인물로 그는 이 인물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하여 완벽하게 표현해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가 진정한 헐리우드의 탑 스타로 거듭나게 해준 작품은 역시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0년 작 <글래디에이터>였다. 이 영화에서 검투사 막시무스로 출연한 그는 특유의 선굵은 연기를 유감없이 펼쳐 새로운 영웅의 모습으로 등극하게 된다. <글래디에이터>를 통해 그는 마침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되었고 방송 영화 비평가협회를 포함해 세 개의 비평가 협회로부터 최고 남자배우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또한 헐리우드 외신기자협회와 미국 배우 조합, 그리고BAFTA로부터 남우주연상 후보로 선정되었다.
2001년에는 론 하워드 감독의 <뷰티풀 마인드>에서 정신 질환에 시달리는 뛰어난 수학자 존 내쉬를 완벽히 연기해냄으로서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고 세 번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또 골든 글로브 상을 비롯해 방송 영화 비평가 협회상 미국 배우 조합상, 그리고 BAFTA 상을 수상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2003년 작품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에서는 백여명의 승무원들의 목숨을 책임지는 리더로 출연하며 강인한 남성상을 선보였고, 이 작품으로 2004년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