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는 스토리텔링이 실종한 소설이 난무하는 시대에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흔치않은 작가 중 하나다. 스토리라인은 시원하게 달려나가고, 그것을 전달하는 문장은 깔끔하고도 매끄럽다.
그의 소설을 밑줄을 긋거나 책장을 접어가며 두번 세번 곱씹어 읽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한번 읽고서는 아무에게나 주어버려도 그만, 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하루 중 가장 무료한 시간에 한 챕터씩 읽어나가며, 아, 내일은 주인공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라 기대하는 설레임, 소설 읽는 독자가 바랄 수 있는 지극히 단순한 이 즐거움을 그의 소설은 제공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시의 번역가 겸 평론가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여러 편의 시집을 낸 후 비로소 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가, 서술적인 요소가 뚜렷하며 너무나 미국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소설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은 의외이기도 하다.
이 탁월한 거짓말쟁이는 재미난 거짓말과 자신의 경험과 미국의 역사를 벽돌과 모르타르처럼 쌓아서 소설을 만들어나간다. 하늘을 걸어다니는 소년(<공중 곡예사>)이나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개(<동행>), 주인공을 책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로 고용했던 노인이 실상 주인공의 할아버지였다는 우연(<달의 궁전>), 이같은 상상의 벽돌 위에 미국의 역사와 국토에 대한 사실들이 모르타르처럼 덧발라진다. 때로 <거대한 괴물>처럼 유나바머에 대한 사실로부터 거짓말을 거꾸로 엮어내기도 한다.
또한 가명으로 추리소설을 쓰는 주인공, 콜롬비아 대학을 나왔으며 뉴욕 메츠의 야구경기를 즐겨 관람하고 브루클린과 맨하탄을 쏘다니기를 좋아하는 주인공, 삼촌이 물려준 박스 속의 책을 읽으며 유년을 보낸 주인공에서 독자는 폴 오스터의 개인적 체험을 읽는다. 그의 개인적 체험은 이 소설 저 소설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서 그것을 끼워맞추는 것은 오스터 독자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된다(그러나 <빵굽는 타자기>를 읽으면 모두 알게 되어버리리라).
오스터가 얼마나 대중적인 작가가 되었는가는 그의 소설들이 속속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에 발을 담근 것은 웨인 왕 감독이 그의 단편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바탕으로 '스모크'라는 영화를 만든 때부터인데, 오스터는 이후 '룰루 온 더 브리지'를 직접 감독하기도 했다. - 김명남(starla@alad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