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정주의의 종말을 선언해도 좋은가? 이 질문은 수정주의가 고민하고 비판했던 한국현대사 및 전후세계사의 모순과 갈등,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슬픔과 고통이 끝났는가를 묻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수정주의의 용도폐기는 시기상조이다. 현존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자본주의의 우월성은 보여 주었지만 정당성을 증명하지는 못하듯이, 따라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맑시즘이 아직은 약효를 갖고 있듯이 말이다. 또한 한반도 분단의 비극에 관한 미국의 책임이 완전히 면제될 수는 없고 미국의 패권주의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한, 수정주의와의 섣부른 결별은 민족적 이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실주의와 민족주의 앞에서 이제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는 오랜 소모적 적대관계를 청산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지식인 사회가 하나의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난다는 것은 보수와 진보의 차이와 무관하고 우파와 좌파의 구분과도 상관없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다. 지식인 사회는 지성과 반지성의 대립과 대결 구도 속에서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발견하고 이를 유지·확대해 나아가야 한다.
물론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사이에는 중도라는 영역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무릇 지식인 사회라면 지성과 반지성 사이의 중립은 결코 잇을 수 없다. 지식인의 곡학아세는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정치권력이 아닌 일반 대중을 상대할 때 훨씬 더 불순하고 불길하다. 민주주의가 만발하고 정보 사회가 범람하는 우리 시대에 대중선동이나 대중영합은 지식인에게 가장 달콤한 유혹이자 죽음의 독배일지 모른다.
미래학은 실증적 차원과 규범적 차원으로 구분된다. 전자의 경우는 '있음직한 미래'를 추정·예측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제안하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있음직한 미래'와 '바람직한 미래'를 동시에 다루면서 무엇보다 203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우리가 취할 의지와 선택에 따라 바람직한 미래를 있음직한 미래로 만들 수 잇고, 바람직한 미래를 있음직한 미래로 바꾸지 못할 수도 있음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