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 『테라피』가 환영이 현실로 드러나는 기발한 착상을 줄거리로 딸에 대한 아버지의 병적인 사랑을 그렸다면, 이 소설은 딸과 어머니의 애증 관계에 대한 섬세한 성찰을 담고 있다. 자신이 대결해야 하는 성향, 가족들 사이의 복잡한 심리적 문제를 넘어 딸과 어머니가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서로에 대해 보여주는 배려와 애정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한편 첫 소설과 비교한다면 이 소설은 서사적 요소가 더욱 풍부하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긴박하게 전개되는 한편의 영화를 감상한 느낌이 든다. 작가는 플롯과 등장인물의 성격묘사에서 영화적 감각을 잘 보여 준다. 덕분에 이 작품은 이미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고, 영화 판권까지 팔렸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 소설이 가진 미덕은 심리 묘사가 요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다양한 심리 상태, 도저히 원인을 다 캐낼 수 없고 또 현미경으로 들이대어 분석할 수 없는 인간이 지닌 신비한 성향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주는 문학적인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성』 역시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전후 맥락이 분명하지 않은 갇힌 상황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토지 측량사임을 자처하는 K라는 인물이 한 마을에 도착해 그 마을이 속한 성과 성의 관청으로부터 자신의 직업 활동과 개인적 삶을 인정받기 위해 절망적으로 벌이는 투쟁이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를 이룬다. 개인이 어떤 대상을 두고 투쟁을 벌이는 구도는 카프카의 여러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데, 『성』에서는 개인의 투쟁이 생존 차원의 투쟁으로 보다 확장되는 형국이다. 하지만 K의 노력은 결실을 거두지 못한다. 성에 진입해보려는 한주 동안의 시도는 물론 마을에 정착하려는 시도 역시 실패하고 만다. K는 성에 들어가기 위해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기대하지만, 주민들은 특이하고 비극적인 존재들로서 통찰하기 어려운 사건들에 K를 연루시키며 또 그가 해독할 수 없는 모순적인 암시들만 제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