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수록된 글들의 성격이 일목요연한 것은 아니다. 문학에 대한 글이 중심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그 범주는 메이지 문학부터 현대 일본 소설, 나아가 재일 한국인 문학에까지 펼쳐져 있다. 일본과 일본 문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심 견지하고자 했던 원칙은 한국, 일본을 막론하고 일국적 담론 체계 속에 자리 잡은 규범적 인식으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두고자 한 점이다. 이와 같은 '따로 하기'의 지향과 글을 쓰던 당시의 문제의식이 책 속의 글에 어떤 형태로든 투영되어 있을 터이지만, 그에 대한 비평적 판단은 온전히 독자의 몫일 뿐이다.
2003년 12월 27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문화가 최대의 수출품이 되다'라는 부제가 달린 <쿨cool 제국 일본>이라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일본이 13년 간의 경제침체로 인해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상에 손상을 입고 국가신뢰도도 저하되었지만 이제는 지구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나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20세기에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하드 파워로 존재감을 과시했던 일본은 21세기에 접어들어 문화를 바탕으로 한 소프트 파워를 앞세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한류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곳곳을 넘나드는 사이에, 일류(日流) 역시 세계 규모로 물줄기를 뻗어가고 있다. 이런 형상에서 21세기가 문화 지정학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조짐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