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내는 개정 4판은 이전 판 곳곳의 여러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하였으며, 특히 몇 군데는 내용을 대폭 추가하였다. 우선 이전 판 7장(언어의 의미)의 5절(맥락과 의미)을 떼어서 확장하여 8장(언어와 맥락 의미)으로 독립시켰다. 새로운 8장은 언어학 분야 중 화용론에 해당하는데, 화용론은 언어가 맥락 속에서 사용될 때 발생하고 전달되는 의미를 다루는 분야이다. 크게 보면 화용론도 의미를 다루는 것이므로 의미론 속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이전 판에서 의미론 장의 하나의 절로 넣었었다. 점차 언어의 사용 맥락이 중요시되는 언어학의 관점을 반영하여 이 부분을 수정, 보완하여 하나의 장으로 독립시켰다. 또한 14장(언어와 컴퓨터, 이전 판 13장)은 인공지능(AI) 등 나날이 빠르게 발전하는 (언어 관련) 컴퓨터 응용 분야의 특성을 반영하여 대폭 보완하였다. 아울러 1장의 단어 형식과 의미의 관련성, 2장의 형식과 의미의 독립성 논의 부분은 형식과 의미가 서로 의존하는 면이 있음을 보충하여 기술하였다. 또한 다른 여러 부분에서도 이미 기술된 내용에 대한 반례 혹은 반대 관점까지 제시하여 독자들이 폭 넒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이 외에도 책의 전체에 걸쳐 수정과 보완을 통하여 책의 내용이 좀 더 정확하고 풍성해지도록 힘썼다. 마지막으로, 최근의 언어학 경향을 반영하여, 언어 지식만이 아니라 언어 사용을 중요시하는 관점, 즉 언어 자료를 이용한 언어 기술과 설명을 시도하는 사용 기반(usage-based) 관점에 대한 내용을 보충하였다. 부차적이지만, [영화+언어] 부분에도 가능한 한 새로운 영화들을 언급하여 딱딱한 언어학 논의를 조금은 부드럽게 하였다.
2020년 1월 - 개정 4판 머리말
이 책의 원전은 저명한 의미론 학자 존 라이언스(John Lyons)의 명저 Semantics 1, Semantics 2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7)이다. 존 라이언스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언어학 교육을 받았고, 에든버러대학교와 서식스대학교에서 언어학 교수를 지냈으며, 1985년 이래 케임브리지대학교의 교수로 활동하다가 2000년에 은퇴하였다. 그는 의미론의 대가이면서 의미론과 이론언어학에 관한 중요한 책들을 저술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의미론 1>과 <의미론 2> 이외에도 <구조주의 의미론>(1963), <이론언어학 개론>(1968), <촘스키>(1970), <언어와 언어학>(1981), <언어, 의미, 맥락>(1981), <자연언어와 보편문법>(1991), <언어 의미론 개론>(1995) 등 폭넓은 관점에서 언어학과 의미론을 논의한 저작이 많이 있다.
라 이언스의 <의미론 1>과 <의미론 2> 원전은 1977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래 1990년대 말까지 10여 쇄가 발행된, 현대 의미론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이다. 방대한 양의 이 책은 의미론의 모든 중요한 개념과 방법을 망라하여 정리하고(주로 1권), 이에 더하여 저자의 독창적인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주로 2권). 이 책의 강점은 의미론을 어느 한 이론의 관점에서만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 심리학, 커뮤니케이션학, 논리학, 기호학 등 "의미"를 다루는 여러 학문의 관점을 고려하고, 언어학 내에서도 생성언어학뿐만 아니라 구조주의 언어학과 형식논리주의 관점도 포괄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 의미론>(Semantics)이 의미론, 나아가 언어학의 매우 중요한 저서로 인정받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이 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그 방대한 양으로 인하여 쉽게 번역에 착수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중 출판사가 시장성을 고려하여 출판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최종 번역 원고가 원고지 7000매에 달한다). 둘째, 원전의 출판 연도는 30여 년 전으로서, 현재로서는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의미론은 1980년대 이후에도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특히 몬태규 의미론에 기초한 형식의미론이 발전하였고, 최근 형식의미론의 관점에서 접근한 의미론 개설서로 좋은 것들이 많이 나와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77년에 나온 라이언스의 저서가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단, <의미론 1>의 6장과 7장에 현대 형식의미론의 핵심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의미론의 발전이 철학, 논리학, 심리학, 기호학 등의 확고한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임을 고려할 때, 다양한 관점을 망라하여 논의하고 있는 <의미론>의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다. <의미론>은 최근의 의미론 소개서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이며, 나아가 오늘날의 의미론 연구자가 편협한 관점을 탈피하기 위하여 읽어야 할 필독서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책은 그 포괄성 때문에 학부 및 대학원의 교재로서도 손색이 없다. 관련하여, 역자는 이 책의 원전이 출판된 이후의 의미론의 이론적 발전 과정을 역주에 충실히 반영하려고 노력하였다. 2008년에 이 책이 학술진흥재단의 명저 번역 과제로 선정됨으로써, 훌륭한 가치를 가진 불후의 명저 <의미론>의 번역이 마침내 가능하게 되었다.
외 국어로 된 언어학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전문용어와 예문이다. <의미론> 번역과 관련하여, 한국에서 의미론 연구의 역사가 꽤 길기 때문에 많은 영어 용어들에 대응하여 통용되는 우리말 용어들이 있지만, 하나의 용어에 대하여 여러 개의 번역 용어가 사용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또한 어떤 번역어들은 원저자가 사용하는 뜻과는 다른 방식으로 번역된 것들이다. 저자의 용법과 일치하는, 현재 통용되는 우리말 용어들이 있으면 가능한 한 그것들을 따랐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나름대로 숙고하여 가장 적절한 것들을 채택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언어정보학회가 제공하는 의미-화용 분야 용어 표준화 이니셔티브의 자료가 일부 도움이 되었다. 번역의 과정에서 앞에서 정한 번역어가 나중에 등장하는 용어와 상충하거나, 이미 채택한 용어보다 더 적절한 번역어를 발견할 때에는 번역의 중간이나 출판 전 교정 단계에서 바꾼 것들도 많이 있다. 이 책이 의미론 영역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거의 모든 의미론 용어가 나오기 때문에 대부분의 용어들을 한꺼번에 놓고 번역어를 체계적, 일관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독자의 편의를 위하여 용어 대조표를 책 뒤에 제공하였다. 예문에 대하여 말하자면, 이 책이 대부분 영어의 예들을 제시하고 논의하는데 그것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설명상의 문제가 없으면 영어 예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제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의미와 관련된 현상은 대부분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단, 영어에 대한 메타언어적 기술이 중요한 경우, 그리고 영어 예문에 해당하는 우리말 표현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에 영어 표현 예를 (우리말 번역과 함께) 그대로 제시하였다. 특히 2권의 통사론 관련 기술 부분은 영어 구문이 중요하므로 영어 표현을 그대로 쓴 것이 많다. - 역자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