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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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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칠면조가 숨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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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지구에 글 쓰러 오지 않았다

당신에게도 이 소리가 들리나요? 마음이 쓰이나요? 잊을 수가 없나요? 나와 함께 소리를 따라가 볼래요? 하지만 찾을 수 없을 거예요. 가다 보면 우리가 찾는 게 무엇인지 잊게 될 테니까…….

우리에게 없는 밤

두번째 소설집이다. 첫번째 소설집에는 여덟 편을, 이번 소설집에는 열 편을 싣게 되었다. 그러니까 발표를 스무 편 가까이 한 것인데, 아직도 소설을 시작하지 않은, 아니 시작하지 못한 기분이다. 여전히 작가라는 이름이 낯설다. 어쩌면 그건,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글을 쓴 시간이나 분량과는 무관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라는 직업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겸손함이라든가 자아 성찰과는 무관한 의미로. 「아무도」를 쓸 때에는 인칭에 관해 생각했다. 단순하고 정직한 마음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인칭을 잠깐 고민했던 것이 나를 가라앉게, 그러므로 담담하게 만들었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예전에 많이 들었던 ‘어떤날’의 앨범을 다시 들으며 썼다. 나는 어릴 적부터 허무나 권태에 관해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어쩌면 삶의 진실을 본능적으로 남보다 빨리 알아차린 건 아닐까, 하고. 그것이 나의 비극이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허무와 권태가 싫었기 때문에, 그것을 간절히 떨치고 싶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에 파고드는 인간이라고, 그게 좀더 나의 진실에 가까운 것 같다고 지금은 인정한다. 요즘에는 종종 유튜브를 본다. 유튜브는 나와 무관한 세계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제인의 허밍」을 쓸 때에도 그랬다. 지금 다시 쓴다면 또 다른 작품이 나올까. 「우리에게 없는 밤」은 제목을 먼저 떠올렸다. 처음 제목을 염두에 두었을 때에 마음에 담고 있던 인물과 서사가 있었지만, 소설을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이 소설의 제목은 이번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데, 이 소설이 소설집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읽히지는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이 제목은 이번 소설집을 아우르는 제목으로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다음 소설집이 나온다면 그때에는 작품 제목이 아닌, 소설집만의 제목을 지어보고 싶다. 한창 식물 키우기에 관심을 가지던 때에 「몬스테라 키우기」를 썼다. 불과 2년 전쯤일 뿐인데 몬스테라 알보의 가격이 폭락하여 이제는 웬만하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품종이 되었다. 얼떨떨해진 나는 퇴고 과정에서 시세에 맞추어 작품에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대로 두었어도 큰 상관은 없었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플루토, 너의 검은 고양이」는 가장 짧은 시간에 쓴 가장 짧은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소설집을 엮을 때 다시 읽으며, 내가 쓴 글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좋았다. 「멜론」은 일종의 ‘납량 특집’ 기획으로 쓴 소설이다. 예전부터 나는 ‘무섭고 불길한데 왠지 웃음이 비실비실 나오는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무섭고 불길하기만 한 글은 비슷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거기에 웃음을 더하는 일은 멀기만 하다. 하지만 뭐, 목표란 원래 요원한 것이니까. 아닌가. 「9」는 수년 전에 카지노에 가본 기억으로 썼다. 나는 운을 시험하는 모든 것에 쉽게 매혹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러한 것에 결코 매혹되지 않는 이들에게 훨씬 끌린다. 「집」은 오랜만에 긴 여행을 마친 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시작했다. 나는 집중력이 짧고 시간 낭비가 주특기인데, 특히 비행기 안 같은, 낯선 이들과 촘촘하게 부대끼는 공간에서 눈에 불을 켜고 소설을 쓴 기억을 떠올리면, 역시 마감은 무서운 것이며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싫어한다. 애초에 몸이 아침형으로 설계되지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일찍 일어나게 된다는데 나도 그럴까? 아직도 나는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에 창을 열고 밤공기를 마시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맞은편 빌라의 복도에 불이 깜빡 켜지는 것을 본다. 처음에는 무섭다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몸과 빛」은 죽음 이후에 대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물질적인 방식으로 써보고 싶었던 글이다. 나는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만 깊게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처음 소설집을 낼 때에는 내가 과연 두번째 소설집을 낼 수 있을까 궁금했다. 따뜻하게 응원해주신 문학과지성사 여러분꼐 감사를 전합니다. 많은 힘이 되었어요. 처음을 함께해준 원경 씨, 나무와 행복하기를. 마지막까지 세심하게 살펴주신 필균 선생님께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무엇보다 김형중 선생님의 글을 함꼐 싣게 되어 이 책이 제게 더 소중해졌습니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요즘에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끝’에 대해서 생각한다. 오늘의 끝, 만남의 끝, 마음의 끝. 결국 몸의 끝을. 몸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고 믿는다. 그것이 위안이 된다. 여기에, 여전히 미성숙한 내가 있다. 자주 반복적으로 징징대는 나를 견뎌주는 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생생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이들의 힘으로 나는 어설프나마 의욕을 끄집어내어 생활인으로 살아내고 있다. 그들에게 사랑과 감사와 존경을. 그리고 나의 열두 살 강아지 쪼무에게도. 나의 말과 내가, 나의 글과 내가, 내가 말하지 않고 쓰지 않은 것과 내가, 일치될 수 있기를 바란다. 불가능한가. 그러므로 나는 내가 계속 쓰기를 바란다. 쓸 수 있기를.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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