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장이 손님상에 낼 북어를 사납게 두드리던 술집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이토록 치열하게 공부하고, 습작하고, 합평하는 것이 소설가로 살고 싶어서인지, 제대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고 싶어서인지.
무리 중 하나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나는 ‘소설가’의 삶을 살고 싶어. 다른 하나가 말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죽을 때까지 소설을 쓰겠다는 자세가 먼저 같아.
긴 시간이 지난 지금, ‘가’ 의 삶을 간절히 원했던 사람은 소설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소설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 사람은 속세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쓰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때 두 가지 다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신이 주신 부실한 재능과 게으름의 응원으로 ‘가’의 삶도 문학에 천착하는 삶도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 지나간 얘기를 새삼 들추는 것은 변명이 필요해서다. 끈기와 노력의 부족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새 인물을 가공하는 작업을 아주 놓을 수는 없는 터, 오래 갇혔던 파일 속 존재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 놓기로 했다. 이런 일은 매번 부끄럽지만,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울림이나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하고 희망한다.
겨우내 나무들은 새 발가락 같은 가지로 도시를 지켰다.
어느 순간 바람결이 순해지고 나무들이 호들갑스레 웃으며 제 이름을 외쳤다.
오랜만에 만난 K가 해맑은 얼굴로 돌복숭아 꽃을 보러 가자고 했다. 기대로 들뜬 K와 J 그리고 내가 차를 타고 강변을 달렸다. 한참을 달려 산언저리의 허름한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건물 옆을 지나 산과 강을 연결한 데크 길에 들어섰다. 강가의 나무들은 일제히 연둣빛이 되어 있었다. 그 부드럽고 풍성한 연둣빛은 수종마다 미묘하게 차이가 났다. 순연한 연두, 노랑을 품은 연두, 파랑을 품은 연두, 갈색을 품은 연두. 연둣빛 나무들 너머에는 물비늘이 고운 강이 누워 있었다. 우리는 그 몽환적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의 걸음 사이로 간간이 연분홍 산벚꽃이, 진분홍 돌복숭아꽃이 섞여 들었다.
K와 J가 이 고운 것들에 경탄하며 카메라에 담았다. 나도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에 웃음을 흩뜨린 것도 같다. 가끔 자전거를 탄 사내들이 곁을 지나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지난봄에 담았던 튤립을 버리고 카톡 배경을 돌복숭아꽃으로 바꿨다. 그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이 아름다운 것들을 다시 눈에 담지 못할 이들이 떠올랐다.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다.
사고가 아닌 한 누구도 생몰을 같이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지난 초겨울 황황히 떠난 이들이 놓아지지 않는다.
함께한 시간의 겹이 쉬이 풀어지지 않는다.
기온이 오른다. 한 계절이 또 가고 있다. 그들은 불쑥불쑥 나를 찾아온다. 자신들에게 고마워하라고, 때론 미안해하라고 내게 종용한다.
살아 있었다면 누구보다 기뻐했을 당신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광이와 광혁, 수연, 건우 그리고 내가 아는 많은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 전한다.
모든 이들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