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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나는 항상 인간과 그 인간이 처해 있는 현실을 써야 한다고 대답한다.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 나는 가급적이면 그것(즉, 인간이나 인간의존재를 드러내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여야 한다고 대답한다. 끝으로, 왜 그것을 그렇게 쓸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 나는 흔들림 없는 소신을 가지고 대답한다. 어떤 것, 즉 인간과 인간이 처해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만 하면 대부분의 경우 상당한 미적 가치를 갖는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나의 독자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거나 깨우쳐주려고 글을 쓰지는 않는다. 만약 내가 쓴 글을 읽고 나의 독자들 중에 어떤 이가 무엇인가 가르침을 얻거나 깨우치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의도했던 것이 아니다. 나는 독자들이 나의 글을 읽음으로써 그들의 의식이 보다 자유로워지기를 기대한다. |
| 내가 음모하고 있는 방법들이 우리 시대의 인간의 상황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포획해 낼 수 있는가 하는 데 대해서 나는 아직 무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지금껏 우리가 해온 그 반복적 어로 작업을 다음 세기의 독자들은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
| 오래 전부터 나는 추리소설이 아닌 추리소설을 써보고 싶어했다. 추리소설처럼 보이면서도 추리소설이 아니고, 추리소설이 아닌 것처럼 보이면서도 추리소설인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추리소설의 형식이 지울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은 커다란 낡은 벽시계나 마찬가지로 생명이 없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매력 있는 낡은 형식을 하나의 생명 있는 것으로 만들어보려면 일단은 그것이 갖는 기계주의적 정밀성을 파괴해버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나의 음모는 하나의 추리소설이 아닌 추리소설을 써보는 것이었다. 이 작품을 나는 지난 여름 제주도에서 썼다. 그 뜨거운 제주도의 여름 햇살 속을 혼자 걸으면서 나는 인간의 비극적이고 숙명적인 아이러니를 상상하고 있었다. |



| 나는 이제 또 한 권의 소설을 독자들 앞에 내어놓는다.
이번 작품은 지금까지 내가 써온 소설들 중에서도 가장 짧다. 그러나 가장 긴 시간에 걸쳐 씌어진 작품이기도 하다. 1998년 5월에 쓰기 시작하여 2000년 5월에서야 탈고할 수 있었으니 무려 2년이 걸려 그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 나의 다른 작품이 3,4개월 혹은 4,5개월이 걸렸던 것에 비하면 이 짧은 소설은 너무나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아니할 수가 없다. 정말이지 이번처럼 고통스럽게 쓴 작품도 달리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을 쓰면서 내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고뇌에 찬 한 인간의 독백을 한줄 한줄 떠올려 옮기는 일이었다. 이 일은 얼마나 고통스런 것이었던지 피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쓰는 일은 나에게 있어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의 그 혼란스런 모놀로그는 곧 내 내면의 언어들이고, 나는 그것을 진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절대성 앞에 봉착해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좀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마침내 이렇게 모든 것을 진술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로써 나는 아홉번째 소설을 내는 셈인데 내 생애에 내가 해야 할 그다지 많지 않은 숙제 중의 하나를 해냈다는 생각이다.
다른 작품을 낼 때도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것을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이 작품 역시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아무런 유익한 정보나 교양을 주지 못하고, 따라서 그런 것을 구하려 했던 독자들은 크게 실망을 하게 될 텐데, 나는 그들에게 굳이 실망감을 안겨주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에 이상한 호기심을 발동시켜 10년 이상을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에도 이제는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나의 몇몇 애독자들만이 이 책을 읽고 실망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분들만을 위해 글을 쓰게끔 되어 있는 나의 운명에 대하여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는 행운으로 생각한다.
이 작품을 내면서 나는 특히 김병익 선생님께 감사한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그렇겠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이 작품의 원고를 꼼꼼히 읽어봐주신 선생님의 친절과 성실성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이 작품을 출판하는 데 선뜻 동의해준 문학과지성사 채호기 사장님께도 감사드린다.
2000년 10월
하일지 |



| 내가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몇 해 전 내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그 나이의 젊은이들이 흔히 그렇듯이 내 아들 또한 인생에 대하여, 특히 자아의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 결과 어떤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아들을 위하여, 그리고 같은 또래의 내 제자들을 위하여 인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 한 권 쓰고 싶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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