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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전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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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외로웠지만 가장 황홀했던 남태평양 여정>

단테처럼 여행하기

나의 여행은 조금 독특하게 시작되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주치의의 권고를 좇아 멀리 길을 떠났다. 아픔을 딛고 긴 여행길에 나섰을 때 몸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를 떠나 새로운 나를 찾아가라고.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붓을 들었으나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말 못할 사정까지 더해져 정처 없이 떠돌다 호주의 깊은 산골에 둥지를 틀고 십여 년을 칩거했다. 묻힐 곳이라도 장만하려고 잠시 귀국한 사이에 내가 살던 호주의 산에 큰 산불이 일어났다. 사백칠십여 명이 화장되었다. 마지막 남은 재산까지 소실되어 어쩔 수 없이 고국에 남게 되었다. 처음과 끝이 버무려진 것 같기도 하고 처음도 끝도 없는 것 같기도 한 종잡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길 위에서 내가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또 하나의 나였다.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인생을 확인하고 싶었다.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인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스스로를 재창조할 수 있는 존재’라 믿으며 길 위에서 ‘잃어가는 나’와 ‘잃어버린 너’를 되찾고 싶었다. 그 강렬한 그리움이 나를 살아남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방식이 나에게 죽음을 선고했으므로, 살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을 하거나 사랑을 하는 일은 사람이면 누구나 하는 행위이지만 많은 이들이 기존의 방식을 되풀이할 뿐 새로운 방식을 찾으려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들이 해온 대로 되풀이하는 화가나 시인은 화공이고 문필가일 뿐 참다운 의미의 예술가가 아니듯이, 누구나 하는 대로의 방식을 넘어 새로움을 찾아야 창조적인 마음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홀로 긴 여행에 나서본 적이 있다면, 잃어버린 사랑을 그리워해본 적이 있다면, 스스로를 사랑해본 적이 있다면, 존재하는 것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선홍빛으로 피어난 꽃 앞에 넋 놓고 서 있어본 적이 있다면, 그 순간 꼭 짚어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그 사람에게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견문기에 그치지 않는, 삶에 대한 철학을 담을 수 있는 여행기를 쓰고 싶었다. 이 책 한 권에 끝나지 않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여기에 실린 그림은 길 위에서 그린 것이다. 그리다 만 것 같은 어쭙잖은 그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되기를 바란다. 여행의 소득은 전혀 알거나 보지 못했던 것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다고 여겼던 것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끼고 새로 고쳐보는 데 있다.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은 ‘어디에서 왔느냐’는 물음과도 통한다. 과거에 대한 배려는 미래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다. 나그넷길에서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도 자유인이다. 인생 그 자체가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작은 노력들이 나그네의 새 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2015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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