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초여름, 나는 완전한 시를 썼다, 꼭 한 편. 그야말로 완전에 조금의 틈도 없는 시였다. 여자 국어 선생님께 연애편지인 양 시를 건넸다. 그 후 졸업 무렵까지 내가 선생님께 들은 말은 '지도'와 '편달'이 아니었다. '칭찬'과 '경탄'뿐이었다. 실로 완전한 시가, 내게는 있었다.
겨울 어느 날, 시가 뜯겨나갔다. 형 친구들이 놀러 와서 시를 훔쳐간 것이다. 형이 어려워 말도 못 붙이던 시절, 형 친구들을 찾아가서 '내 시 내놔라'고 말할 용기가 차마 생기지 않았다. 국어 선생님께 달랄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저 속으로 앓기만 했다.
몇 번이고 복원을 거듭했지만, 더 이상 완전한 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단 한 번 떠올랐던 시는, 새침한 여선생님과 시골 총각들의 가슴을 적시며, 영원히 내 마음속으로 숨어버렸다. 나는 지금도 그 시를 향한 간절함, 그리움으로 시를 쓴다. 먼 마음의 바다 속에서 가끔 들려오는 아련한 떨림, 말의 내음, 미묘한 질감, 또 세계를 향한 한 소년의 과도한 열정과 천진한 믿음으로.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의 출현은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육체가
정신의 귀싸대기를 때린 것이다
정신에 대한 앙갚음
이제 정신을 거부한 육체들의 향연은
무작위, 무분별, 무질서의 형태로
광범위하며 자본주의의 충만한 신체에 붙어
나풀댄다
들로 산으로 꽃을 찾아 날아야 할
꿀벌이
꿀단지 속에 빠져버린 격
여전히 정신은 정신이 없다
깊은 반성은 없이
오직 아버지가 되겠다는 외침들뿐!
이런들 저런들-
에서, 나는 시를 쓴다
에서, 나의 시는 쓰다
2012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