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가 무슨 이런 책을 다 내?”
혹 이렇게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책도 한 권 내고 싶은 욕심을 못 눌러 이렇게 책을 낸다. 이른바 노욕(老慾)이라는 것이겠다.
이 책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Ⅰ은 시(詩)다. 내가 시를 썼던가? 지난 봄 서가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시가 됐든 못 됐든 내가 쓴 글이어서 버릴 수가 없다. 끝 두 수 <보내고 돌아오는 길>과 <하루>는 며칠 전에 썼다. 앞 두 편은 동시(童詩)다.
Ⅱ는 수필(隨筆)이다. 이 장은 어린이를 위한 수필(童隨筆), 짧은 수필, 보통의 수필, 이렇게 세 부분으로 짜여 있다. 내가 쓴 수필들 중 그래도 좀 마음에 드는 것들이다.
Ⅲ은 소설(小說)이다. 역시 지난 봄 서가를 정리하다가 눈에 띈 것이다. 아마 30대에 쓴 것 같은데, 그러면 50년 전이다. 내가 그때 소설을 썼다는 게 도무지 믿기질 않는다. 어떻든 내 젊은 날을 보는 것 같아 또 못 버리고 여기 싣는다.
Ⅳ는 넓은 의미의 비평(批評)이다. 이 가운데 <朴演求(박연구)論>과 <許世旭(허세욱)論>은 내 동갑내기 친구, 그 둘의 사람을 논한 것이고, 그 밖의 것은 약간 천착해 본 글들이다. 이 가운데 <尹五榮에게 끼친 張岱의 影響>은 내가 비교문학의 이론을 배우고 처음 써 본 글이다.
내 고향은 충청북도 영동(永同)이다. 일제하 말년, 곧 2차 세계대전 말기였다. 영동 읍내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야트막한 언덕이 길게 누워 있었다. 그 언덕을 지나 한 5리 더 들어가면 야산, 거기에서 다시 한 5리를 더 들어가면 검푸른 산맥이 아아(峨峨)했다. 다리는 트럭 두 대가 스쳐 지나갈 만큼 컸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큰다리라고 불렀다.
그곳을 지나는 언덕은 늘 볕이 좋았다. 거기 반(半)거지들이 움집을 짓고 살았다. 한 대여섯 집쯤, 집집마다 식구가 네댓은 되었다. 모두 살아가는 방식이 비슷비슷했다. 아이들은 읍내에 나가 밥을 빌고 여인네는 밥을 빌면서 더러는 남의 집 허드렛일도 하고 남정네는 나무를 해다가 읍내에 팔거나 장터를 돌며 막일을 하거나 했다. 그러다 돈이 좀 모이면 그 움집을 버리고 떠났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언덕 바짝 곁으로 냇물이 흘렀다. 그 물은 큰다리를 지나 어디론지 멀리 사라졌다. 물이 얕고 맑았다. 여름이면 읍내 조무래기들이 그 냇물에 와서 멱을 감았다. 그 인근을 매천리(梅川里)라고 불렀다. 고향 떠난 지 어언 반세기여, 지금은 어찌 변했는지 모르겠다.
당시 읍내 사람들은 모두 가슴에 주소, 성명, 혈액형이 새겨진 명패를 달고 다녔다. 미군기(美軍機)의 폭격으로 혹 다치거나 죽거나 할 때를 대비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때 처음으로 혈액형이니 수혈이니 하는 말들을 알았다. 혈액검사는 영동 구세군병원에서 했었다.
오랜 옛 추억들을 되새기며 소설집 2편을 집필하였다. 읽으신 분들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소설집 1편보다는 흥미가 더 가미되었으며, 부드러움이 느껴질 것이다.
책 제목은 《아버님의 주치의》라고 정했다.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아버지였는데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다가, 담임목사를 그만 두고서야 며느리는 비로소 목사님을 아버님이라 불렀다.
첫 번째 소설집에 이어 두 번째 소설집을 선보이게 된다.
이 책 또한 범우사의 후의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종합출판 범우사 대표이신 윤형두 회장과 편집부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
2019년
필자는 2002년 범우사의 후의로 《한시(漢詩)가 있는 에세이》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을 냈다. 제목 그대로 우리 한시 한 편씩을 소재로 쓴 에세이집이다. 그리고 곧 이어 그 이듬해 《옛시가 있는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책 한 권을 또 냈다. 이 책은 향가(鄕歌)를 비롯한 우리 옛시 한 편씩을 소재로 쓴 에세이집이다.
그 후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또 범우사의 후의를 입어 책 한 권을 더 낸다. 가로되 《옛이야기가 있는 에세이》-. 역시 우리 옛이야기 한 편씩을 소재로 쓴 에세이집이다. 이 옛 이야기는 ‘옛날 어느 곳에-’로 시작되는 민담(民譚)이 아니고 다 문헌(文獻)에 기록된 것들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지난 2, 3년 《수필과 비평》, 《좋은 수필》에 연재, 《한국산문》에 ‘정진권 특집’으로 게재했던 것들을 대폭 수정한 것이다.
필자는 우리 젊은이들이 이 책을 많이 읽어 주었으면 한다. 옛이야기는 결코 낡은 것이 아니다.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사람 삶의 다양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곧 옛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교훈을 주고 생각거리를 주고 자신의 삶을 반성케도 하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의 출전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책들 모두가 우리 옛이야기의 보고(寶庫)이므로 여기 보인다.
강효석(姜斅錫), 《대동기문(大東奇聞)》
권응인(權應仁), 《송계만록(松溪漫錄)》
김경진(金敬鎭), 《청구야담(靑丘野談)》
김부식(金富軾),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시양(金時讓), 《부계기문(涪溪奇聞)》
김 여(金 鑢), 《담옹유고(潭翁遺藁)》
김 육(金 堉), 《해동명신전(海東名臣傳)》
박동량(朴東亮), 《기재잡기(寄齋雜記)》
서거정(徐居正), 《동문선(東文選)》
- 《동인시화(東人詩話)》
-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 《필원잡기(筆苑雜記)》
성 현(成 俔), 《용재총화(慵齋叢話)》
손진태(孫晋泰), 《한국민족설화연구(韓國民族說話硏究)》
송세림(宋世琳), 《어면순(禦眠楯)》
심노숭(沈魯崇), 《효전산고(孝田散稿)》
유몽인(柳夢寅), 《어우야담(於于野談)》
윤기헌(尹耆獻), 《장빈거사호찬(長賓居士胡撰)》
이 기(李 墍), 《송와잡설(松窩雜說)》
이덕형(李德泂), 《동각잡기(東閣雜記)》
이 이(李 珥), 《석담일기(石潭日記)》
이인로(李仁老), 《파한집(破閑集)》
이제현(李齊賢), 《역옹패설(櫟翁稗說)》
정홍명(鄭弘溟), 《기옹만필(畸翁漫筆)》
차천로(車天輅),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
허 균(許 筠), 《성소복부고(惺所覆瓿藁)》
끝으로 《~가 있는 에세이》 세 짝을 짝지어 주신 범우사 대표 윤형두 회장과 편집진 여러분의 후의와 노고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표한다.
- 기해년 2월에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나는 한 오십여 년간 수필을 써 왔다.
수필은 제약이 많은 글이다. 어떤 내용이든, 붓 가는 대로, 결코 그렇게 써지는 글이 아니다. 소설이라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야기도 수필이기 때문에 그렇게 쓸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소설이 쓰고 싶었다. 이 수필이기 때문에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을 정말로 자유롭게 써 보고 싶어서다. 그래서 시작하여 썼다. 여기저기 발표도 했다. 이제 그 쓴 글들을 모아 책을 엮는다.
첫 소설집이다. 세상이 두렵다.
책 제목을 하필 《추어탕집 처녀》라고 한 것은 나도 그 까닭을 잘 모르겠다. 혹 그 처녀가 내 마음에 퍽 흡족해서 그런 건가?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다 착상이 아둔하고 문장이 거칠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쓴 글이다.
이제 이 책을 내게 되었으니, 기쁘기 그지없다. 내가 소설을 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소설가 노순자 선생, 내게 《문학시대》의 지면을 아낌없이 할애해 주신 동지(同誌) 발행인이자 수필가인 우희정 선생, 두 분의 함자가 고맙게 떠오른다.
이 책은 범우사의 후의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범우사(社) 대표이신 윤형두 회장과 편집부원 여러분의 후의와 노고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
- 2019년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