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이 늘 안개 속에 갇혀 있는 듯 불안하고 답답하다.
무엇에 기대거나 관습에 복종하지 않을수록 더 그렇다.
시는 어쩌면 이러한 관계의 중력을 거스르려는 데서 생기는 안개나 가스, 때론 돌멩이였다가 그것들이 뭉쳐진 또 하나의 행성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시집도 따끔한 선생과 묵묵한 조력자 노릇을 마다하지 않은 아내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 감사하다.
2022년 5월
박형진
나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평생 땅을 파먹고 살아왔지만 어인 판속인지 살림은 늘지 않고 빚만 늘어간다. 남들처럼 쓰지 않고 먹지 않고 땀 흘려 일해도 해마다 빚이 느니 사람 미칠 지경이다. 빚만 없다면 하늘에라도 오를 심정일 것 같다. 나에게 욕망이란 상향조정될 필요도 없이, 제발 돈의 폭력으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는 것뿐이다.
그러기만 한다면 조그마한 내 논밭에 거름 넣고 미꾸라지 지렁이처럼 흙 속에서 뒹구는 일로 소일할 것이다. 땅에서 나오는 것들을 더 많이 이웃에게 나눠주고 흙집 토방마루 한켠을 열어서는 지나가는 길손을 불러 막걸리잔을 나눌 것이다. 옷이야 흉볼 사람 없을 테니 잠뱅이 하나쯤 걸쳐야지. 애들이 학교 가기 싫다면 보내지 않고……. 그리고는 걸어서 이 나라 산천을 꼭 한 번은 누비리라! 나에게 욕망의 상향조정은 이런 것일 뿐이다.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를 써왔고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여태껏 그럭저럭 살아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안타깝고 후회스럽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지금은 달라진 게 있느냐 하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제 앞에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그저 지수굿하게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군요. 특별히 할 말도 없고요.
시집이 나오기까지 컴퓨터를 쓸 줄 모르는 저 때문에 아내가 많이 고생했습니다. 출판사분들께 고맙습니다.
2019년 4월
글을 써 놓은 지가 십 년이 되었다.
돌아보니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그 동안의 이러저러한 변화야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처음 연필을 잡고 책상에 앉아 밤을 새우던 기억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 이야기를 쓰게 했을까?
고리타분한 유년의 기억을 지금도 버릇처럼 되작거려 보는 것은
그것이 결코 변할 수 없는 한 세대 전의 가치로써
아직도 나의 삶에 유효한 까닭이며,
엄청나게 변해버린 참담한 현실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변화와 소통을 두려워하는 자폐증의 그것일 터이다.
거두절미하고,
세상은 과연 좋아졌는가?
굳이 한 세대 전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농사꾼이, 자기가 애써 가꾼 농산물을 팔지 못하고
쌓아 놓거나 나눠 먹을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살기 좋은 세상이 오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경쟁이 없는 사회, 돈이 필요 없는 사회는
내가 오매불망하는 유토피아이다.
몸서리가 쳐지도록 무서운 노예같은 삶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사람이라면
이런 풍요로운 세상이 펼쳐지는데
춤추고 노래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전복의 춤이며
이제까지 만들지 않은
전혀 새로운 빵을 만들기 위한 맷돌질의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