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왜 왔냐는 질문에 대부분 이민자들의 대답은 "애들 교육 때문에 왔다.", "잘 살아 보려고 왔다."라는 말들을 흔하게 합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3, 40대의 60% 이상이 기회가 되면 외국으로 이민을 가겠다고 설문에 답했다는 기사를 읽고 사람들이 외국 생활이라는 것에 너무 근거 없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이민 관련, 또는 외국에 관한 서적들이 외국 생활을 실제보다 미화하고 있기 때문이 그 중 하나의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이억만리 타국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오기만 하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는 만만한 곳 역시 아닙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땀을 흘려야만 더운 저녁을 먹을 수 있고, 남들과 간신히 발을 맞추어 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는 이야기, 미국 사는 이야기는 미국이라는 나라보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에 포커스를 맞춘 살아가는 이야기들입니다. 한 번씩 막연한 환상으로 그려 보던 화려한 외국 생활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이민이나 유학을 돕는 가이드북도 아닙니다. 남의 땅, 타향에서 어떻게든 뿌리 내리고 살아 보려는 주변 사람들의 땀내 나는 이야기들입니다. 밤이면 고향 생각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며, 스파게티 먹으면서 신 김치 한 쪽 생각에 눈물 쏟아내는 그런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들입니다.
얼마 전 서울에 가니까 친구들이 장난 삼아 '미국 거지' 왔다고 놀려 대었습니다. 내 나라 등지고 외국에 나와 사는 사연이야 제각각 다르겠지만, 알게 모르게 교포들에게 주어지는 시선은 예상 외로 냉랭했습니다. 하지만 외국에 나와 사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조국에 대한 강한 긍지를 가지고 삽니다. 베트남처럼 나라 망해서 탈출해 온 사람들보다 우리 한국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더 알맹이 있고 힘차 보이는 이유는 언제든지 그리울 때 머리를 돌려 쳐다 볼 수 있는 하늘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습니다. 티격태격 다툼이 있는가 하면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화합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4.29 흑인 폭동 때 올림픽 거리를 가득 메운 평화시위대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 코리아타운을 온통 물들인 빨간 티셔츠의 기억도 생생합니다.
오늘도 외국에 사는 우리 한국 사람들은 아이들이 자신들이 한국 사람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해 주려고 부단히 움직입니다. 이미 일일 생활권이 되어 버린 이 글로벌 시대에 언젠가는 이 아이들이 조국을 위해서 큰 일을 할 거라는 부푼 기대를 가슴에 안고 말입니다.
(2003년 11월 21일 알라딘에 보내주신 작가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