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대 시인들의 부채의식의 근원이자 창작의 원형으로서, 현실 비판의 중심 주제일 뿐만 아니라 언어 실험과 자아 분열의 근본적인 계기를 이루고 있다. 이는 어느 누구도 시대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1980년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시대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인 20명에 대한 시인론이다. 해당 시인들은 대체로 1950년 전후에 출생하여 1970년 중반~1980년대 초반에 등단했고, 1980년대에 첫 시집을 내고 왕성한 시작 활동을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시인들을 민중시와 실험시 같은 이분법적인 틀로 나누지 않고, 그들이 추구했던 다양한 개성을 살리고자 했다.
연재가 계속되는 동안 무던히도 여러 곳을 찾아 헤맸다. 전시회장과 공연장을 돌고, 문화 정보를 수집하고, 다양한 장르의 언어들을 익혀야 했다. 한편으로는 작가와 시인을 섭외하고 그들의작품을 송두리째 다시 읽는 작업이 반복됐다. 누군가를 만나고 그의 언어와 사고를 곡해 없이 전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타자와의 소통 가능성을 보았다. 지지부진한 삶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인간 정신의 고귀함을 일깨워준 작가와 시인들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