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야 깊이 만날 수 있는
그 길을
젖으며 마르며 간다
그대 있는 그곳에서
바람 불어오고
비 오는 줄 안다
느티나무를 지나
물푸레나무를 지나
가야 할 길이 먼
어디쯤에서
풀꽃만 한 시의 우산을 펼친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는 그대에게로
한없이 가겠다
2019년 10월
시는 어디에도 있었다.
묶인 개의 눈빛에도 버려진 소주병에도
자꾸 얼음을 끌어 덮는 고등어의 선잠에도
대부분 뒤편에 있었고 낮은 곳에 있었다.
시적 장면과 마주할 땐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각도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말 걸었다.
그 표정의 안쪽을 보려고 가만 눈을 감으면
내 안쪽이 보이기도 했다.
그것들도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잠속에서도 머릴 감을 때도
어디에도 하찮은 것은 없다는 걸
의미 없는 것은 없다는 걸
디카시를 쓰면서 새삼 깨달았다.
2023년 가을